대부분 사람들은 두 그림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찾는 게임을 틀린 그림 찾기라고 말한다. 또한 습관적으로 ‘사람마다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라고 하지 않는다.
‘다르다’고 해야 하는데 ‘틀리다’고 말한다. 이처럼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다.
‘틀리다’는 동사로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바르지 못하거나 비뚤어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먼저 남과 비교하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나와 틀린 것을 찾아낸다. 나와 틀린 것을 약점으로 보고 판단하고 비난의 구실을 삼는다.
사람은 남을 판단할 때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같다, 다르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이분적인 사고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남을 판단하고 항상 잘못된 ‘틀리다’로 지적한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기를 고집하면서 자기 편리대로 쉽게만 살려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어떤가 보자’라는 마음을 품고 반드시 남도 똑같이 판단하고 틀리다고 비난한다. 이로써 아무리 사실이라도 감정이 상하면 자기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틀리다고 지적하고 비난하면 결국 서로의 인간관계가 깨어져 버리고 만다.
성경에서도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틀리다’는 고쳐야 할 것이라면 ‘다르다’는 인정하는 것이다. ‘틀리다’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면 ‘다르다’는 존중하는 것이다. ‘다르다’는 형용사로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지는데가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판단과 비난 그리고 차별과 억압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교회 안에도 흘러 들어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틀리다’와 ‘다르다’로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남을 나와 다르다고 인정하고 존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고 선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된다. 이처럼 ‘틀리다’의 사고가 ‘다르다’라는 의식의 전환이 있을 때 갈등에서 화해의 길로 가게 된다.
이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