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기 위해 짐을 싸본 사람은 길 떠나면 눈썹도 짐이 된다는 것을 안다. 길을 가다 얻어 먹은 죽도 머리가 아프다. 갚을 길 없는 마음의 짐을 지고 가기 때문이다. 남이 진 짐은 가벼워 보이지만 막상 같은 짐을 져도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길을 가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사는 동안에 가로 지나 세로 지나 외로 지나 모로 지나 갈빗대가 휘도록 진 짐은 또 얼마던가.
생활의 걱정과 근심은 염려로 남고 마음의 짐으로 전이되고 영혼의 짐으로까지 감염된다. 정작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은 마음의 늘어 짐과 영혼의 무너 짐이다. 이는 한국을 떠나면서 짐을 싸고 이 땅에서 새롭게 살려고 짐을 풀었는데 물건만 내려놓고 생각과 습관은 한국적인 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지기 좋은 짐은 다짐이다. 새로운 이민과 유학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는 분명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반드시 사람과 맺힌 것이 있다면 싼 짐을 풀듯이 풀어야 한다. 때로 엉키고 꼬인 부분이 있더라도 외면하거나 포기하면 절대로 해결할 수 없고 다만 시간만 지나고 만다. 반드시 다시 꼬이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삿짐이나 삶의 짐이 때로는 애물단지 같을지라도 풀거나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수고해도 무거운 짐을 벗을 수가 없다.
하루의 일상을 사는 동안에 수고하여 땀을 흘리고 어렵고 힘들다면 잠시 멈추어야 한다.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휴’하고 한숨을 쉬게 된다. 휴는 ‘休 쉴 휴’로 사람이 나무 밑에서 쉬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처럼 휴하고 한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때 쉼을 얻을 수 있다.
쉼은 서서, 앉아서, 걸어서 하던 모든 일을 완전히 멈출 때 가능하다. 그래야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이 숨을 쉴 수 있다. 호흡인 숨이 제대로 쉴 때 그 때 비로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쉴 휴’에 ‘마음 심’자가 들어가면 ‘아름다울 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멍에를 메라’는 말씀은 또 다른 짐을 지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지어야 할 짐을 예수님이 함께 지고 같이 가겠다는 말이다.
삶 속에서 피곤하고 지쳐서 탈진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짓과 위선을 품으면 품을수록 삶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어진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나서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게 된다. 자기 짐을 넉넉히 지고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성도로서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