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가장 기본적인 문맹률은 1.7%지만, 문해력은 중학교 3학년 수준이고 미달은 27%이고 초등학교 수준은 11%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지금은 문맹률보다 문해력이 위기에 있다.
한 문자의 뜻과 의미를 모르거나 이해라더라도 문장에 사용되면 10명 중 3명은 주제 파악이 전혀 안 된다는 사실은 심각한 사회적 불통을 가져온다. 지금은 책에 관해 무관심하거나 책을 멀리하고 더 나아가 책을 읽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면서 알고리즘과 인공 지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합의로 이루어진 글과 말에 관해 기본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사고 능력이 저하되면서 판단과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문해력에 장애가 생겼다.
지난해 옥스퍼드 사전에 선정된‘뇌 썩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의 중독성은 개인이 비판 없이 정보와 지식을 수용하는데 있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쓸데없는 정보와 지식은 일상에서 관계성을 찾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이해하지 못할 판단과 해석을 하면서 내놓은 말조차 현실성이 전혀 없기도 하다.
일방적인 주장이나 강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통을 가져온다. 더 큰 사회적 불통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데 있다. 불통의 이유를 잘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말을 공감하거나 더 나아가 공유하거나 공생하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가짜 뉴스보다 쓸데없는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면서 분별이나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거나 수면 장애와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 또는 고립되기도 한다. 지나친 스마트폰으로 인한 중독은 불안감을 가져온다. 불안은 우울감을 줄 뿐만 아니라 먹고 자고 일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불안 증세는 자살 유발이나 정신적인 장애로 나타나 자기 이해조차 하지 못하거나 말을 나눌 친구조차 멀리해서 사회적 관계조차 끊어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시편 42편 5절, 11절, 43편 5절 상반절).
질문의 힘은 핵심을 찌른다. 성경 시편 1편 1절에 보면“악인들의 꾀를 다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로 이끄는 것이 있다. 마법처럼 불안으로 이끌고 끌어모으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일상에서 이해 부족과 오해를 불러오는 불안을 끊어내는 것은 바른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읽고 쓰는 것과 정보와 지식을 독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성경이 열어주는 시대와 시세 그리고 사람 이해와 하나님의 마음을 연결하여 풀어내는 지식과 지혜로 불안을 이겨내고 세상을 꿰뚫어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