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과 헬리콥터부모

여기 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10살에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게 된 아이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극심한 영양 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산에서 튤립 구근을 캐 먹고, 전쟁 터의 빈 집에 남겨진 상한 음식들까지 먹어야 했습니다. 언제 폭격을 맞을지 알 수 없는 전쟁 속에서 다행히도 어린 소녀는 긴급구호 물자를 전달해 주는 NGO단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 주는 음식을 먹고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 unicef.or.kr)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그 소녀는 연기와 발레를 배워 배우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각종 만성 질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배우 오드리 햅번의 이야기입니다.

세기의 아름다움이라 일컬을 정도로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인류에 대한 그녀의 헌신적인 삶이었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자신의 생명을 되찾게 해준 NGO의 홍보대사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까지 전쟁이나 기아로 굶주리는 아이들을 찾아가 돌보며 헌신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습니다.

1993년,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3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자녀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그 시의 일부입니다.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기억하라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너의 손을 이용하면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우리는 오드리 햅번의 자녀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했는지 그 뒷이야기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들에게 헌신했던 엄마의 삶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자녀들이 엄마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지 그리고 그녀가 자녀들에게 원하는 모습이 어떠했을지 짐작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씁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좋은 부모란 ‘한 아이가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조력해 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고 주변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빛과 소금’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식을 키워내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민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첫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손톱을 깎아 주어야 했을 때의 일입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그 작디 작은 손톱을 깎아 주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살짝 아기의 살이 집혀 그만 피가 나고 말았습니다.

아기가 아플까 봐 걱정도 되고 너무 놀라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아기도 울고 엄마도 울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큰 상처가 아니라 금방 피가 멈추고 괜찮아졌지만 미숙한 엄마 때문에 아팠을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아기의 첫 손톱 깎는 사건(?)은 그렇게 눈물 범벅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기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육아에 대한 경험이 있고 없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아기에 관한 모든 선택권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일지, 분유를 먹인다면 어떤 종류의 것을 먹일지, 실내 온도를 낮출지, 높일지, 기저귀는 어떤 것을 써야 할지, 언제 갈아주어야 할지 등등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가 “아니야, 싫어!”하고 표현하는 시기가 다가옵니다. 부모는 이때부터 하나둘씩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누구와 어떻게 놀지에 대한 선택권도 점차 아이가 갖게 됩니다. 이때가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건강한 방법으로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독립해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부모가 모든 선택권을 갖고 있다면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도, 그리고 독립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선택권을 모두 자녀에게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직 모든 것이 미성숙하고 덜 성장한 자녀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게 되면 자녀교육에 있어서 방임하는 부모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발달정도와 성장에 맞추어 지혜롭게 선택과 독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로서 그 역할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부모와 자녀 간의 애착도 독립의 영역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건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려면 선택에 대한 허용과 독립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아이 시기부터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건강한 인격체이자 독립된 사회구성원으로 잘 성장 발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캥커루족’, ‘헬리콥터부모’와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성장해서 독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부모에게 얹혀 사는 철없는 자녀를 ‘캥커루족’이라고 합니다. 한편, 자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지나치게 참견하고 간섭하며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를 빗대어 ‘헬리콥터부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장 최근에는 ‘드론부모’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드론부모’는 헬리콥터부모와 같은 의미이지만 문자메시지, SNS 등을 통해 조용히 자녀 주변을 맴돌며 감시한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헬립콥터부모’든 ‘드론부모’든 부모의 지나친 관심은 자녀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건강하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부모가 ‘캥거루족’ 자녀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 큰 성인자녀를 품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배에 있는 주머니 ‘육아낭’이 찢어지고 나서야 후회하면 너무 늦게 됩니다.

때로는 부모가 먼저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자녀를 놓아주고 자녀에게 선택권을 더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도 부모로서 건강한 자존감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나는 뭐든지 잘 할 수 있어!’라는 허세와는 다릅니다. ‘비록 ~는 어렵지만, 난 잘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마인드입니다.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자신의 책에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통해 신을 향한 사랑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만큼의 빈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 자존감을 높이는 것, 자녀를 나의 소유가 아닌 독립된 한 인격체로 키울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먼저 내 안에 있는 빈공간을 잘 채워야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가장 소중한 나의 자녀로도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바람직한 인격체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나 스스로가 먼저 놓아주고,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까지 세상에 본이 되었던 ‘그 아름다운 여인’처럼 우리의 삶도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