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하루와 다를 게 없는 하루

여느 비행을 준비하는 하루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호텔에서 준비를 끝마치고 공항으로 가서 가방을 체크인하였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시큐리티를 지나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탑승 전, 안전 체크를 하나하나 꼼꼼히 끝냈다. 그리고 승객 탑승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는 여행을 앞두고 들떠 있는 가족들 또는 친구들,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웠던 가족들을 보러 떠나는 사람들, 비즈니스를 앞둔 사람들, 단체로 여행을 준비 중인 그룹 등등 별의별 사람들은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륙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승무원들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가방 올리는 것을 도와드리고 안전 체크를 하며 승객들의 자리 잡는 것을 돕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문을 잠근 뒤 승무원들은 기내 안전 데모를 하기 위해 안전벨트와 구명조끼 등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고 데모 비디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이코노미석 기내 중간 쪽에서 누군가가 긴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Medical! Medical! I am starting CPR!’(긴급상황! 긴급상황! 심폐소생술 시작하겠음!)

승객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고 승무원들은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모였다. 그곳을 보니 이미 승무원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30대 정도 돼 보이는 젊은 여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고 상황이 긴급인 것을 알아챈 사무장은 재빨리 기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미 공항에서 활주로로 택시를 진행 중이었던 비행기를 멈추고 돌리기를 요청했다.

당연하겠지만 순간 당황한 승무원들은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트레이닝 받은 대로 로테이션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숨을 쉬지 않는 이 승객의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Communicator 역할을 하는 사람은 계속 기장에게 수화기 너머 이 사실을 전달하며 공항 쪽으로 다시 비행기를 돌리고 구급대원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비행기는 게이트 쪽으로 다시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을 순식간에 긴박한 상황인 만큼 이 승객을 끌고 나가고 싶다 하며 비행기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심폐소생술을 계속 진행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력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손님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긴박했던 몇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사망사고가 일어난 만큼 승무원들은 경찰들과 면담해야 했고 회사와도 계속 연락을 취하여야 했다. 기나긴 하루를 끝마친 뒤 이 승무원은 호텔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나는 요즘 우중충한 날씨의 뉴질랜드를 뒤로하고 날씨가 너무 좋다는 LA에 갈 생각에 들떠서 준비하고 있었다. 머리를 한 번 더 쓸어 넘겨주고, 수염을 꼼꼼하게 밀며 향수를 뿌리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지금 분명 인도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전화를 받았고 여자 친구는 감정에 북받쳐 위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다 말해줬다.

불과 지난주에 일어났던 일이다. Death on Board라는 것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트레이닝 때 받았고 가끔 뉴스나 건너 건너 소문으로 듣기는 하지만 직접 내 옆에서 겪다 보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정확히 그 시점이 어떤 시점인지 아는 승무원의 입장에서 나는 직접 겪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충격이었다.

그런 소식을 듣고서 비행기에 올라탄 나는 괜히 기내 안전 데모를 하면서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륙하면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에게는 항상 당연하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그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행을 마친 뒤 비행기에서 내릴 때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바로 이전 비행에도 특별한 손님이 탔었다. 비행 전에 브리핑하는데, 몸이 많이 안 좋은 승객이 비행기에 탈 예정이다. 혹시라도 그 손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시, 가족이 옆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승무원은 관여하지 말고 심폐 소생 등을 시도하지 말아 달라는 노트가 있었다.

승무원들은 서로 정말 의아해했고 열띤 토론을 나눴다. ’왜 그런 사람이 비행기에 탈 수 있도록 허락했나?’부터 ‘그래도 사람이 앞에서 죽어가면 인간으로서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맞지 않나?’ 또는 ‘그래도 당사자와 가족이 요청한 사항인데 존중해야 않겠나?’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타고 안전 체크를 끝냈다. 그리고 나는 탑승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서비스하면서 앙상한 몸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그 승객을 보았다. 그리고 너무 다행히 손님들과 그 승객이 같이 내린 뒤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승객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호주에서 치료 과정을 끝낼 수 있을 만큼 끝낸 뒤 며칠을 앞두고 본국인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어떻게 보면 그분의 마지막 비행을 우리가 함께한 것이었다. 정말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감정이 슬픈 것은 둘째 치고, 너무 싱숭생숭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다른 승무원들과 다음 주에는 어떤 나라로 떠나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고 몇 달 뒤에 있을 나의 결혼식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같은 공간에 있던 누구에게는 다음 주라는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던 것에 너무 많은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또다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이 순간이 너무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느끼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미래의 계획, 야망을 품고 꿀 수 있는 꿈, 사랑으로 준비하는 동반자나 자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는 계기였다.

위에 두 승객 모두 내 나이와 비슷했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이나 나 또한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있을 때 잘하고 그 사람들과 나의 존재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잘하고 사랑하고 선행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이전 기사그림 전시회로 갈음한 장례식
다음 기사캥거루족과 헬리콥터부모
김 승원
로토루아에서 자라 오클랜드 대학 회계학과 졸업, 빅4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 후 현재 콴타스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MZ 뉴질랜드 청년.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지요’를 실천 중이다. 말 그대로 천지 차이인 두 근무환경에서 일어난 다사다난한 근무일지와 그 안에서 신앙인과 세상사람이 공존하는 여느 MZ청년과 다름없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