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을 얻는 웰니스 다이어리

디멘시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웰니스는 함께 사는 가족이나 그들을 돕는 이들의 웰니스에 의해 좌우됩니다. 디멘시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를 돕는 일은 끝이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들도 끝이 있으면 바짝 힘을 낼 텐데 이 섬김은 끝을 알 수 없는 지루하고 긴 시간입니다. 멀리 내다볼수록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소확행을(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찾아 누리는 자신만의 비법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웰니스 다이어리를 쓰는 일입니다. 웰니스 다이어리를 통해 하루의 어려움과 감정을 쏟아 내려놓고 마지막은 항상 감사로 마무리하는 다이어리를 쓰는 게 나의 웰니스를 유지하는 비법입니다. 오늘은 나의 웰니스 다이어리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103세 어르신 김인명 할아버지의 생신연을 주바라기와 한인들이 함께 모여 축하했습니다. 103세인지라 초청받는 자리마다 생신 케이크가 나오는데 언제나 그 자리의 주최자를 세워주고 더 나아가 한인사회와 미래 세대에 대한 덕담을 잊지 않으십니다.

오늘은 주바라기 행사라고 이 모임에서 제일 어리디어린 목사인 나를 세워주시고 “목사님이 함께 케익을 잘라주세요,” “목사님이 좋은 말씀 주셔서 오늘 행복합니다.” “목사님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이 돈을 내고 어르신이 차린 밥상이고 축하와 선물은 당신이 받으시고, 칭찬과 영광은 내가 혼자 다 받게 하십니다. 식사를 마치고 단둘이 앉아 사진을 찍노라니 어르신은 내게 “참 좋다. 이런 주바라기 모임이 있어서 너무 좋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누구도 들레지 않고 힘이 있으나 없으나 돈이 있으나 없으나 누구나 편안하게 와서 편안하게 밥 먹고 노래하고 말씀 듣고 가는 이런 모임은 이제까지 없었다. 모두가 목사님과 운영하는 분들이 잘 섬겨 주셔서 그렇지요”하십니다.

“요란 법석한 유명 인사들이 오셔서 축사하거나 사진 찍거나 하지 않아도 영의 양식을 전해주는 목사가 있고, 주바라기 운영을 힘을 다해 감당하는 김집사와 육의 양식을 먹여주는 황집사가 있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박집사와 많은 봉사자들이 있으니 늘 복되고 복된 주바라기라 행복합니다” 하십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저도 참 오랜만에 행복합니다.

마당 구석 채전 밭 옆 거름더미에 아욱이며 갓이며 채소 여린 잎들이 뭉텅이로 솟아올랐습니다. 조심스레 여린 잎들을 남새 채소밭에 옮겨 두었더니 며칠 가을장마를 지나고 어느새 자라 식탁 한가득 상추쌈이 올라왔습니다.


하도 기특해 채소 밭에 가보니 올봄에 묻어두고 잊어버렸던 감자며 파며 부추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봉긋봉긋 피어나 있습니다. 씨를 뿌려두고 잊어버렸는데 해가 지나고 비가 내리고 때가 되니 자라서 식탁에 올라옵니다. 우리가 씨를 뿌릴지라도 키우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이제 진리로 이해됩니다.


디멘시아 인지학교 주바라기 사랑방 교실, 밀알 장애인 선교를 위해 작년 한 해 많은 씨를 뿌리고 또 뿌렸습니다. 싹은커녕 몇 개 넘겨받아 밭에 심겨 자라던 것들조차 밑 둥 채로 옮겨 가버리고 횅하니 텅 빈 밭만 남았습니다.

“애쓴 흔적은 많은데 열매는커녕 싹도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에 그만두고 돌아갈까요?” 엄마에게 묻습니다. 구십이 다 되신 어르신이 “그래,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니 네 식구 하나 건사하고 못 살겠니?” 하십니다.


“내 통장에 나 죽을 때 장례하려고 모아둔 돈이 있으니 그것 가지고 시작하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니?” 하십니다. “일은 또 하면 되니 아이들하고 며느리하고 건강하고.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하시니 위로가 되고 눈물이 납니다.

애써도 안 돼서 눈물이 나는 건지 아직도 세상에 단 하나 내 편인 엄마가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 하시는 말이 위로가 되어 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해주시는 기도는 정말 위로가 됩니다. “우리 아들 며느리 두 아들 낯선 뉴질랜드에서 한배 타고 갑니다. 하나님, 이 배를 안전하게 붙들어 주시고 이 가족이 화합하여 주의 선한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어머니는 방언으로 기도하십니다. 나는 “오카이라시 아라마세로 시작되는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 모를 엄마의 방언과 통역을 들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엄마의 기도가 또 나의 하루를 지나가게 합니다. 내가 기도하지 못해도 알 수 없는 도움이 내게 임하는 것은 언제나 내 편인 엄마의 쉬지 않는 기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씨를 뿌립니다. 싹이 언제 날지, 싹이 나고 자란 것들이 열매를 맺을지, 그 열매를 내가 먹을지 알지는 못합니다. 아내는 그게 뭐 농사냐고 합니다. “콩을 얻으려면 콩을 심고, 물도 주고 거름도 줘야지. 팥을 얻으려면 팥을 심고, 물도 주고 거름도 줘야 얻지. 당신처럼 해서 뭐 농사가 될까?” 합니다. 아내 말은 늘 맞습니다.

나도 농사 잘 짓는 사람처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하는 사역이 계획대로 다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건 내 사업이고 하나님의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내가 뿌리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겸손해집니다. 내가 공들여 함께 하고 싶은 좋은 이는 내가 함께 하자 하면 좋은 관계를 끊고 다른 더 좋은 곳을 바라보고 가곤 합니다.

아무도 없다고 좌절한 다음 날, “이젠 그만해야지” 하고 잠든 다음 날 아침에는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나는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내가 원하던 사람들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된 일꾼들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렇게 필요한 일들을 채워주고 또 머물겠지 기대하면 또 자기 갈 길로 갑니다. 일꾼도 하나님이 보내시고 열매도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나는 씨를 뿌립니다. “60살이 다 되도록 늘 씨만 뿌리느냐? 이때까지 뿌렸으면 할 만큼 뿌린 게 아니냐? 한 개를 뿌리더라도 이제는 당신도 좀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하던 일에나 열심을 내라”고 아내는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어찌 아내 말이 허투루 쓸데없는 단어라도 하나 있을까요? 다 옳은 말입니다. 나도 한 가지 일이 다 된 후에 그다음 일로 차근차근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내와 수영을 합니다. 수영장에서 페인트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사장님과 치매 센터의 꿈과 비전을 나눕니다. 한 시간을 쉴 새 없이 말하다 보니 1년 새 참 많은 인지 장애에 대한 식견과 소명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씨는 내 마음에서 자라고 열매 맺고 있었네요.

집에 돌아와 카톡을 열고 노래 동아리 방에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센티멘탈 프랜드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따라 20대 봄날 5월의 교정의 라일락 꽃 향기 맡던 시절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5월의 봄날은 라일락과 최루탄의 매운 향기가 교차합니다. 경외심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교정에 돌아가 나는 20세의 나를 만나 103세 된 어르신의 생신연 예배를 인도하는 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너는 40년 후에도 라일락꽃 피는 봄을 좋아할 거야.”
“너는 40년 후에도 여전히 소년으로 남아 있을 거야.”
“너는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꿈꾸는 피터 팬일 거야.”
“그때 잊지 마! 너는 네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휘둘리는 팔로 살 거야.”
“힘을 빼. 그리고 씨를 뿌려 여기저기. 그러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필요한 곳에 열매 나게 하셔.”
“씨를 뿌리고 싹이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며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둘 거야. 그 나중이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집에 가는 바로 직전일지 집에 돌아가고 한참 후에 들릴 소식일지 모르지만 그 나중에 예수께서 칭찬하시고 기쁨으로 단을 거둘 날이 온 단다.”
“40년 후에는 많은 이삭을 주울 거야. 먹고 살 길을 주실 거야. 근데 칭찬과 명성은 나중 예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때 비로소 행복할 거야.”

나는 꿈 많은 20대 나를 위로하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주님께서 내 입을 통해 나를 위로하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바쁜 하루를 지나고 저녁이 되어 나는 다시 홀로 남았습니다. 103세의 어르신의 “하루하루 살았디!” 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불평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작전을 바꿉니다. 감사드리기로 말입니다. 나는 씨를 뿌리는 삶에도 감사하고, 싹이 난 것도 감사하고, 싹을 틔워 주심에도 감사합니다.


어르신의 생일상에서 물려 내온 백설기 한 덩이를 한입 물어봅니다. 달달한 이 맛! 오늘 만난 사람들의 모든 감사의 말들이 다 찾아와 내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참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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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