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가져다준 사업의 기회
1997년 말 불어닥친 한국의 IMF 여파로 뉴질랜드 교민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으며 나도 또한 하던 일들이 한국 의존도가 매우 높았던 가이드일과 액세서리 도소매업이 all stop 되다시피 하여 경제적으로 재개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지금 당장은 전혀 예측할 수 없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서 뉴질랜드가 영어문화권 국가이고 한국이 전쟁 등 큰 변고를 겪지 않는 한 유학과 이민은 계속될 테니 그쪽으로 사업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한국에서의 나의 학력과 경력과는 도무지 연관 지을 수 없던 분야라 쉽게 답을 못 드리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 말씀이 주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하며 순종하기로 하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이미 목사님께서는 비즈니스를 도울 자들을 섭외하여 예비해 놓으셨고 오클랜드 시내 한복판에 사무실을 제공하여 주는 성도의 도움으로 유학과 이민 회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70만 성도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신앙계 주필 목사님께서 오클랜드를 방문하였는데 이유는 이미 자녀들이 뉴질랜드 더니든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이번에 사모님께서 직접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클랜드에서 차를 사서 식구들과 함께 오클랜드 북섬에서 남섬 끝인 더니든까지 차를 가지고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차를 운전해 줄 사람을 나를 지목하고 안전하게 다녀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망설임 없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거기가 어디라고 차로 그 식구를 다 태우고 위험하게 가느냐고 했다. 전체 일정은 목사님 내외 그리고 두 자녀를 포함하여 운전자까지 총 5명이 오클랜드를 출발하여 중형 세단 승용차로 10시간 운전하여 웰링턴에 도착해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Inter Islander Car Ferry에 차를 싣고 북섬에서 남섬으로 건너가 카이코우라를 거쳐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서 2박하고 크라이스트처치 교회에서 집회하고 난 후 다음 날 더니든까지 내려가는 약 2천여 킬로미터 2박3일 운전 코스였다. 물론 더니든에서 오클랜드로 올라올 때는 비행기를 타고 혼자 올라오면 되었다.
믿음과 순종의 보상은 남다르다
워낙 운전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한 가족 4명을 전부 태우고 하루에 700킬로 이상 3일간 운전한다는 것은 운전자나 승객에게도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졸지 않기를 기도하며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더니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귀국 후 신앙계 주필 목사님께서 연락을 주셨는데 한국 와서 생각해 보니 거리감이 없어 이렇게 무리한 여정을 부탁한 줄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감사하다며 새로이 시작한 유학원 기사를 신앙계에 한번 소개하고 싶다고 내용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솔직히 그 당시 유학원 홍보 방안에 대하여 막연하였는데 이렇게 광고가 아닌 기사 형식으로 소개를 하여 주신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고 그 소개 글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유학원 문의를 해왔고 성공적인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유학원을 시작하였고 부탁받은 일에 망설임 없이 순종한 결과 하나님께서 보답을 주시는데 30년 이민 생활을 돌이켜 보면 유학원 사업을 통하여 뉴질랜드 교육제도를 알게 되고, 학원을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에도 열정을 쏟게 되고, 컨설팅을 통하여 학생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게 된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은 결국 순종에서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마찬가지로 매년 다양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 컨설팅을 진행하다 보면 순종하는 긍정적인 학생과 늘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학생 사례를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한국대학 진학 전문 컨설턴트이다 보니 학생들을 수년간 대학 입시를 위한 지도를 하고 합격자와 불합격자 사례가 쌓이다 보니 데이터에 기반한 컨설팅도 하게 되는데 학생들에게 객관적인 입시 결과를 보여주면서 해야 할 공부와 챙겨 나갈 비교과 활동 등을 이야기하면 순종하는 자세를 가진 학생은 두말 않고 해내고 결과를 가져오는 학생들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학생들의 대학입시 결과는 다 좋다. 왜냐하면 대학 합격에 필요한 성적과 활동들을 알려주면 그 말을 믿고 나를 의지하여 순종하고 이루어 내니 당연히 대학 입학처에서도 서류와 면접을 통하여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학생임을 분별하여 내고 합격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뭐 하나 해보자고 하면 학교 시험이 있어서 안 된다, 봉사 시간하고 겹쳐서 안 된다 등, 기본만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꼭 필요한 성적이나 비교과 활동까지도 소홀히 한다. 그러면 결국 대학 입학 사정관도 성적과 실적이 부실한 학생들은 성적표에 나타나는 선생님 코멘트 역시 좋지 않으므로 쉽게 학생의 아쉬운 점을 발견하고 합격 후보군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리지 않겠는가?
나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는가?
같은 맥락으로 우리도 부모님과 더 나아가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 소명을 감당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보면 믿음으로 기적을, 또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구약시대부터 셀 수 없는 사건,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등 수도 없는 믿음의 사건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검증된 믿음과 순종에 관한 역사를 우리 자신에게는 너무 소극적으로 믿음의 범위와 순종의 한계치를 적용하고 왜 반신반의하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믿음이 없이는 순종이 어렵기 때문에 불순종의 근원은 불신앙 즉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도 보면 순종하는 자녀에게는 뭐라도 더 해주고 그들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반면, 반항하고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하는 자녀를 보면 ‘기도 제목’이라고 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도 주님께 믿음의 자녀가 되고 자랑거리가 되어야지 기도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된다.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녀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그 이유는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자 집안에서 교육자가 나오고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물론 범죄자 집안에서 범죄자가 나온다고도 한다. 그 이유는 자녀들이 결국 부모를 따라 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의사가 아니지만 두 딸은 전부 의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에는 어떤 유전자가 자녀에게 전달되었을까? 예측해 보면 자녀들이 한창 성장할 시기에 부모의 신앙생활과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봐서일까?
두 딸의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니 부모의 권면이나 제안을 거절하거나 순종하지 않았던 적을 사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늘 기도하고 교회생활에 열심이고 목사님과 어른들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보여진 게 자녀들의 일생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물론 뉴질랜드 같은 합리화된 서구사회에서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는 전혀 자녀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1세대의 동양적 사고를 이해해 주고 순종하는 자녀를 양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믿음으로 사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부모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