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륵칼레의 이스마일 베이

수도 앙카라 5백만 도시에서 동쪽으로 80km 정도의 거리를 승용차로 약 1시간 정도 가면 크륵칼레(Kırık 깨어진+ kale 성 城)라는 인구 20만 명 정도가 사는 중소도시가 나옵니다.


근처에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긴 강인 ‘크즐 으르막’(붉은 강, 1,355km) 이 유유자적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은 튀르키예의 주요 식수원이며 3개 댐과 수력 발전소가 있어서 전력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아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튀르키예 사람들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현재 터키어나 영어 교회도 없고, 사역자도 아는 사람이 없어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튀르키예는 한국전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이지 않느냐?” 그래서 크륵칼레 시청을 찾아 갔습니다. 외국 참전 군인들과 전사자들의 인적 사항을 관리하는 담당 공무원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메테 베이(미스터 메테) 라고 하는 키가 자그마하고 배가 불룩한 40대의 인상 좋은 남자가 담당자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폴 리 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혹시 아직 생존해 계신 6.25 한국전 참전 용사가 있나요? 한번 찾아 뵙고 싶습니다.”

1950년도에 20대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면 벌써 90대의 나이일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비록 살아서 고국 튀르키예에 돌아왔다 하더라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메테 베이가 열심히 컴퓨터를 두들기더니, 몇 사람의 한국전 참전 용사 중 생존자 명단을 찾아내었습니다. 그중 시내에 거주하는 한 분을 정하여 밑도 끝도 없이 무대포로 그냥 그 참전 용사의 집으로 바로 찾아갔습니다. 물론 드릴 간단한 선물을 지참하긴 하였습니다.

시내 작은 5층 아파트에 방 3짜리 1층(지상층)에 10살 연하인 부인 ‘삐뚜레’ 와 함께 살고 있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머리는 백발인 ‘이스마일’ 선생이라는 분이 나왔습니다. 키가 나보다 훨씬 크고 건장하실 뿐 아니라 악수를 하니 손 아귀 힘이 아직 대단 하신 분이었습니다. 처음 만날 당시 그분의 나이는 84세였습니다. 만나는 튀르키예 사람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아내와 한국 사역자 한 가정도 같이 찾아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폴이라고 합니다. 혹시 한국 전쟁에 참전 하셨었나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에벳!(예! Yes!)” 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며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한국 전쟁 때 받은 아직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는 메달들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분은 골수 무슬림입니다. 하루 5번씩 기도를 매일 지극 정성으로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들 3명과 딸 2명을 두었으며, 손자 손녀들이 지금 대학생입니다.

이스마일 선생을 보면 5년 전에 93세로 돌아가신 부친 생각도 났습니다. ‘이분께 잘 해드려야겠다. 지금 이 이스마일 선생이 무슬림으로 사시다가 돌아가시면 100% 지옥인데… 어떻게 하든 천국 복음을 전해서 천국 백성을 만들도록 해야겠다.’ 새로운 다짐이 솟구쳐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는 그 집안의 결혼식과 장례식 등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스마일 선생 집을 방문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문맹입니다. 터키어 말은 하지만 글은 전혀 읽을 줄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우선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스마일 선생에게는 ‘하바누르’ 라고 하는 간호사 손녀딸이 있었습니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왔고 또 영어 교사 자격증이 있는 영어 선생이라고 하니까,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오지 말고 친구들도 같이 와서 한 클래스를 만들면 시작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손녀딸과 친구들이 함께 한 클래스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 체인지 Inter Change라는 영어 교재를 가지고, 인터넷 줌(Zoom)을 통해 화상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방과 후 2시간씩 영어 강좌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두 클래스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3년째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스마일 할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십니다. 그런데, 10살이나 나이가 어린 ‘삐뚜레’ 부인이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때 장례 절차에도 다 참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 없이 크륵칼레 근처 20분 거리인 으르막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살던 큰 사위인 ‘무아메르’ 역시 5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 장례식에도 참석했습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이스마일 할아버지는 골수 무슬림으로 지금도 하루 5번씩 집 근처 자미(이슬람 회당)까지 걸어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이스마일 선생을 어떻게 꿈쩍이라도 하게 할 수가 없을 듯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는 이스마일 선생의 큰딸 ‘도뉴스’ 하늠(여사)이 크륵칼레에서 차로 앙카라 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으르막’(강물)이란 조그만 시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 으르막에 조그만 다이레(월세) 방 3개짜리를 얻었습니다. 당시 월 300리라 (NZD 60)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이곳에 머물면서 주변 튀르키예 사람들과 콤슈(이웃)로 사귀고, 이스마일 선생을 찾아 뵙고 있습니다.

이스마일 선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슬람 신도들은 철저하게 ‘행위 구원’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알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1주일 내내 지켜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알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면 그 사람의 오른쪽 어깨에 훈장 같은 상점을 주고, 알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 좋은 일을 하면 왼쪽 어깨에 벌점을 준다고 믿습니다.

나중에 이 세상을 마치고 알라 앞에 서면 저울에 자신을 달아 보게 됩니다. 그때 저울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천국으로 가고, 왼쪽으로 기울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비 진리’를 믿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것을 믿는다면, 모든 무슬림은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 이곳 무슬림 국가인 튀르키예에서도 살인, 강간, 폭력, 절도 등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안 좋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골수 무슬림 이스마일 선생도 이제 93세를 넘기고 있으니, 오늘이라도 하나님 부르실 수 있는데, 아직도 요지부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잠과 꿈과 환상 가운데 회개의 영으로 이스마일 선생을 만나 주셔서 부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천국 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 중입니다.

동시에 이스마일 선생의 가족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도 이스마일 선생 댁을 또 찾아 뵈어야 하겠지요?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