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식 개선

장애는 선택할 수 없지만 장애를 대하는 태도는 선택 가능

요한복음 9장 1절~3절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1절~3절)

편견을 깨뜨리는 사랑: 누구의 죄인가?(요한복음 9:1-3)
장애는 죄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은 장애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시고자 하신 예수께서 시각장애인을 만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깨뜨려준다. 제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장애를 죄의 결과로 이해했다.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은 선천적인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며 예수께 물었다. 제자들의 질문에는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 즉 장애의 원인을 죄라고 치부하는 편견이 담겨 있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장애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장애와 불행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주신 것이다.


장애는 축복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누구도 장애인 가족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장애인 가족을 낳고 고난의 삶을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장애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환경이나 여건들로 인해 전체 사회 구성원 중에 4% 정도로 장애가 발생한다. 장애는 그 확률 중에 하나로 찾아온 것이다.


장애가 재수 없거나 죄로 인해 주어진 것을 여기면 불행하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장애를 저주나 죄가 아니라 축복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예수께서는 편견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장애와 불행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주신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장애 자체의 불행과 고통에 주목하기보다 제자들의 시야를 하나님께로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육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보는 것 같으나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주신지도 2,000여 년이 지나가지만 안타깝게도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학교 건립을 끊임없이 반대하고 서슴없이 방해한다는 보도를 접하면 씁쓸하다.


또 장애인 인권과 보행자의 불편함을 시정해달라는 행동을 하는 장애인들을 보며 같은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보게 된다.


다행히도 이런 물리적인 편견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정서적이고 영적인 편견들이 존재한다. 장애인을 무능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편견이요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불편하게 보는 것도 아니요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시각에서 보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존엄성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가족으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는 어린 시절부터 손가락이 없어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희아의 부모와 희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엄성을 잊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피아노를 가르쳤고 또 배웠다.


희아는 네 손가락으로도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결국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희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장애를 극복하고 축복으로 바꾸었다. 그의 이야기는 장애가 삶의 한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장애인뿐 아니라 많은 비장애인에게 용기를 주었다.

하나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다: 치유와 희망(요한복음 9:6-12)
“장애는 선택할 수 없지만 장애를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며” 장애가 있는 부분을 어루만져 주셨다.


장애와 관련해서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장애를 직접 만지고 치유하고 거기에 희망을 주시는 분이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신다.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누가복음 4:18).” 예수님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장애와 불행을 치유하는 일임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만지심을 받은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말씀대로 순종한 그 사람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고 예수님의 고치심을 자신의 치유로 받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의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마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시려 하신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님의 만지심과 고치심과 치유하심을 받은 시각장애인이 한 행동이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초점이 장애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맞추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맞출 때 아무리 어려운 장애일지라도 기적을 만들게 된다.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세상과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이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빛과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세상에 대해 불평과 원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게 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시각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새로운 의미를 주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에게 치유와 희망을 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순종하므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세상에 비추고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어 주시는 사랑과 봉사의 삶을 통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사명을 잘 감당하자.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맹인 강영우가 있다. 강영우는14세에 사고로 공을 눈에 맞아 시각 장애가 되었다. 사고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갑자기 숨지고 말았다. 그의 누나도 영우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지만, 과로로 죽고, 이와 동시에 세 남매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맹인학교에 들어간 강영우는 점쟁이나 안마사가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삶을 포기하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깨고 싶었다. 학문을 갈망했던 그는 점자를 배우며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로 왔던 여대생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이 나중에 강영우의 아내가 된 석은옥 여사였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원서접수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결국 연세대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었고, 낮은 체육학점에도 불구하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석은옥 여사와 결혼하고 한국 장애인 최초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름으로 미국 국무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그 뒤 2011년부터 췌장암으로 인해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에 평화장학금으로 25만 달러(한화로 약 2억9000만원)를 기부했다. 그리고 2012년 2월 23일 향년 68세의 나이로 천국에 입성했다.


강영우의 저서의 제목 에서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다.
“불가능(Impossible!)을 다시 고쳐 쓰면(I’m possible!) 나는 가능합니다’ 로 바뀝니다. 암보다 무서운 것은 포기입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9:13-38)
실로암의 뜻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 앞에서 시각장애인이었던 그 사람은 더 이상 죄인도 장애인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증인이 되었다.


시각 장애인이 고침을 받은 후 그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비방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열등하게 여겼고, 그들의 말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은 편견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변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의 증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의 믿음에 용기를 주고 있다.


우리 역시 편견을 깨뜨리는 용기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그들을 존중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을 증언한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를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그들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며,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 역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장애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전했다.


우리 역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빛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삶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때,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리적,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장애의 극복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영적인 편견과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다.


형태가 다르더라도 장애를 부모의 부적절한 건강관리나 유전적인 문제 등으로 부모에게 돌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하셨다.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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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