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출처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전영혜 기자

자녀와 함께 부모도 성장해야

누워만 있던 아기가 앉고 서게 되면 볼 것이 많아지며 인식할 게 많아진다

태어난 후 첫 일 년은, 나머지 인생에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새롭게 많은 것을 배우는 시기라 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생경한 느낌 속에서 아기는 다양한 발달 과제를 이뤄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것일지. 이 점이 바로 부모가 최선을 다해 아이와 놀아주고 불편함을 덜 갖도록 보살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가정은 어떤 곳인가
가정은 사랑과 이해,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장(場)이다. 세상에 맞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곳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애정과 배려를 받으며 고통과 불만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를 용납하고 변화할 기회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살아가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면, 아이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면서 얻어야 할 창의성을 제한받고, 또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모 자신도 해결할 기운이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전능한 부모의 이미지에서 차츰 자녀 자신이 단단해지도록 중심을 옮겨가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정직함과 책임 있는 모습, 열정과 사랑이 흘러나오는 사람,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각자 서야 하는데 이런 면의 습득은 거의 후천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존감은 학습되는 것이어서 언제든 재형성될 수 있음이 희망이다. 부모는 씨앗이 땅 위로 나와 잘 자라도록 양분과 빛, 수분을 살펴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웃음과 사랑, 밝고 가벼운 분위기로 아이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 박사는 강조한다. 키 작은 아이가 항상 위를 올려다보게 되는 것, 한쪽 팔을 잡고 걸을 때 겨드랑이가 당겨지는 것을 이해하면서 아이의 입장에 서보는 자세를 가지라고.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사티어 저)를 읽으며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연상되었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사람이 생존 본능에 따라 이기적 반경에서 살아가기 쉽지만, 그 속엔 하나님을 닮은 속성이 있어 사랑의 마음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어이 자신의 필요만 좇으며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통해 한계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죽음의 때’를 아는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에, 이 땅에 생명으로 나게 한 하나님의 뜻이 ‘일반적인 예측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무한히 힘겹게 여겨져 그것을 회피하려는 세대에 조심스레 줄 수 있는 소설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이 세 가지를 가족 심리학자들도 비슷하게 강조한다.


사랑과 격려를 적절히 받은 아이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겨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으며 나눌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불편함과 긴장이 있을 때 그 감정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가계의 어려움이나 관계의 갈등을 지나는 부모의 솔직한 태도를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가족원의 죽음이 발생했을 때 잘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현실을 알게 하며 의미 있는 경험의 자리가 된다.


낙태와 유산의 경우 마음으로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가족 안에 ‘얽힘’이 발생한다고 가족치료사 헬링어는 주의를 준다.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는, 마치 차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처럼 멈춰서 상태가 어떤지 살피고, 도움을 청하면서 조치하듯 의연함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 앞에 왜곡된 감정이 올라오는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
트라우마의 이어짐을 막을 수 있나

부모로서 아이에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어가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또 부모로부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그 트라우마를 떠맡고 싶지도 않다. 이에 대해 마크 윌린 박사는 복잡한 감정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 ‘반응하는 패턴’을 인식하고 ‘자기 돌봄 방법’을 익혀 가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며 지속적인 탐색을 할 수 있게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구체적으로 육체와 감정의 증상 뒤에 있는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말로 표현해 보고, 핵심 불안과 불편이 무언지를 적어 본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묘사, 느껴지는 감정을 적고,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언어로 표현한 감정은 더 이상 자신에게나 자녀에게 심각한 영향을 입히지 않는다니, ‘솔직한 드러냄’이야말로 늪 같은 무의식을 처리하는 열쇠인 셈이다.

가족이 함께 겪은 어려운 일은 ‘가족 이야기’로 만드는 방법이 제시된다. 가족 각자의 관점에서 그 일에 대해 말하며 넓은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 문제를 감정과 분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이름을 붙이면서 삶의 한 페이지로 넘길 수 있다.


안정감과 평안…호르몬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대부분 가족과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가정이 주는 분위기는 날씨나 공기처럼 가족원을 감싸고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부부가 다툼이 있었을 때는 반드시 아이에게 설명해 주라고 한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분위기는 느끼고 감정을 갖게 되니까.


평안한 가정을 그토록 원하나 그것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호르몬 변화로 인한 것이다. 남성의 자존감도 흔들리게 하는 중년의 위기가 오기도 하고, 여성의 경우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여기며 갑자기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아기 역시 생후부터 2세 사이에 호르몬 폭풍 현상을 겪게 된다는 연구가 나왔다. 어린아이가 고집을 피우고 ‘아니야’를 반복하는 두 돌 경이 이 ‘小(소)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막스 나우도르프).



삶의 이런저런 한계를 알게 되며 우린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