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관찰은 큐티를 여는 열쇠다

큐티 본문을 읽고 관찰만 잘해도 묵상이 한결 쉬워진다. 관찰을 통해 본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주석적 도움이 필요한 본문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론 본문을 잘 읽고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묵상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관찰에 대한 일반적인 과정과 몇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한다.

본문을 읽고 요약해 보자
큐티 교재로 묵상을 한다면 대체로 하루 본문의 분량은 열 절 내외다. 조금 길 수도 있겠지만, 본문을 두세 번 읽고 난 다음, 자기가 이해한 내용으로 요약하거나 개요를 적어 보는 훈련을 해보자. 본문 관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긴 본문을 한두 줄로 요약해 보거나, 육하원칙에 따라 자신의 말로 써보자. 개요를 만들어도 좋다. 개요는 요약보다 더 간결해야 한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핵심 단어나 제목으로 개요를 만들어도 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8장에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두고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을 읽고 요약하거나 개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긴 내용이지만 자기의 말로 요약하면 이렇다.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을 바리새인들은 돌로 치라고 부추기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뒤, 모두 다 돌아가자 여인을 용서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개요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반대되는 반응’ 정도다.

강조되는 내용을 찾으라
할애된 지면이 많을수록 중요한 내용이다. 복음서의 삼분의 일 정도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록된 순서도 유념하면서 관찰해야 한다. 예컨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여기에도 순서가 나온다.

바울과 실라 중 바울이 먼저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도 순서를 관찰하며 읽으면 의미가 살아난다. 이유도 없이 붙잡혀서 매를 실컷 맞고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로 깊은 감옥 속에 던져졌을 때 곧장 찬송이 나올 수 없다.


먼저 신음에 가까운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기도 중에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담대함을 주시니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송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지 않았을까? 반복은 강조를 의미한다. 반복되는 단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하는 이유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그만큼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에 따라 본문을 살피자
인물, 시간, 장소, 사건, 원인과 결과와 같은 것들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누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지, 언제인지, 장소는 어딘지에 대해 관찰해야 한다. 어떤 일인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보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형제들은 누구인지, 자는 자는 누구를 의미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할 때 너희와 우리는 누구인지를 관찰해 보아야 한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서 슬퍼하라는 것인지 슬퍼하지 말라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자. 자는 자는 ‘죽은 자’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관찰을 했다면, ‘왜’ 죽은 자를 자는 자라고 했을 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관찰이 자연스럽게 묵상으로 넘어 가게 된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 슬퍼하라는 것인지 아닌지도 관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으니 슬퍼할 수는 있지만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는 말라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관찰을 통해서도 훌륭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슬퍼하고 울 수도 있지만, 부활의 소망으로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정도로만 슬퍼해야겠다는 적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맥을 따라 큰 그림을 보자
문맥을 따라 읽는 것이 중요하다. 단어 하나가 가지는 고유한 뜻도 있지만, 그 단어가 어떤 문맥 속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단어뿐만 아니라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앞뒤의 문맥을 함께 읽고 본문의 내용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예로 들었던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같은 경우도 앞에 있는 문맥을 따라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문맥을 따라 읽으면 접속사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접속사가 나오면 표시를 해두고 앞뒤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가 나오면 잠깐 ‘멈춤’을 해야 한다. 누구를 의미하는지, 어디를 의미하는지를 문맥 속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내용 관찰에 실패할 수 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막 9:14) ‘그들’이 두 번 나오는데, 앞의 ‘그들’은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들이고, 뒤의 ‘그들’은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를 가리킨다. 이런 부분을 확인하지 않고 읽으면 의미의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단은 성경해석을 잘못함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문맥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발췌하여 교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속인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도 성경 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큐티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도 문맥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보너스
큐티를 오래 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다양한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관찰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Holynet’이라는 다국어 성경인데 한 화면에 두 가지 번역을 띄워놓고 비교할 수 있어 편리하다. 모바일 폰으로 볼 땐 ‘HOLYBIBLE’이라는 앱을 애용하는데, 모든 종류의 영어 번역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큐티 교재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바일 폰이나 컴퓨터로 할 수도 있지만, 줄을 긋거나 표시할 수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성경을 직접 펼치고 할 수도 있지만, 줄 긋고 표시하면 다음번에 선입견이 생겨서 어렵다. 정기적으로 새 성경을 구입하면 되지만 손때 묻은 성경이 좋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추천하고 싶은 큐티지가 있는데, 큐티선교회에서 발행되는 ‘큐티인’이라는 교재다. 연령대별로 영문번역본이 나와 있고, 무엇보다 모든 큐티지에 큐티 간증이 실려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한 생생한 간증이 본문마다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큐티인’의 전신인 ‘날마다 촉촉이 적셔주는 이슬비’라는 큐티선교회에서 발행하던 월간지에 ‘큐티맛보기’라는 개인 큐티 나눔을 실었던 것이 ‘큐티 간증’의 출발이었는데, 큐티선교회 총무 시절 필자가 편집책임자로 있으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말씀의 뿌리가 약한 이민 교회와 성도들을 큐티로 섬기고자 기도하고 준비 중에 있다. 독자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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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철우
고신대 및 동 졸업. 전 오클랜드 사랑의교회 담임. 대학 때 소개받은 말씀묵상(Q.T) 신앙과 목회의 기초를 이루고, 서울 사랑의교회‘날마다 솟는 샘물’ 월간 큐티지에서 6년 동안 큐티전문 사역자로 활동했다. 큐티 클리닉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