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에 필요한 것들

가을이 되었다. 아내가 텃밭에서 받은 씨앗을 볕 좋은 곳에 말려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작은 씨앗 하나를 들여다보며 여러 생각에 빠져본다. 씨앗 하나로 사계절을 들여다본다. 비발디의 음악 ‘사계’에서처럼, 봄은 단단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던 갑옷 같은 껍질을 벗어내기 위해 처음에는 강렬하다가 이내 잔잔해지고, 여름은 무성하게 자라는 속도감과 생명력을 잘 드러낸다.

그 무성한 여름은 집안일을 하는 나와 아내에게도 흠뻑 땀을 흘리게 했다. 아내는 부지런히 텃밭을 가꾸고 나는 모퉁이를 끼고 있는 집의 많은 풀을 깎아낼 때마다 흘리는 땀이 한 바가지(?)가 될 듯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깎이는 풀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자연에서 풀의 목적은 씨앗, 즉 종자를 맺는 것에 있다. 그 과정에 있는 풍성함은 사실 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들에게 보이는 여름의 풍성함은 활발한 광합성 작용을 위한 좋은 종자를 얻어내려는 몸짓이다. 꽃대를 내기 시작하고 꽃봉오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풍성하던 잎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풀들은 스스로 잎을 말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씨앗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농부들은 일부러 잎을 떼어주는 것이다. 씨앗이 무르익어 갈 즈음에는 식물은 휴면기에 들어가기도 하고 아예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며 한 줌의 거름이 된다.

오늘은 서두가 참 길었다. 선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선교사는 ‘자신이 하나님께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된다. 하나님의 일에 자기를 하나님이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이 선교사이다. 스스로 자신은 필요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선교사로 헌신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을 지난 글에서 말한 소명(召命, Calling)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 즉 하나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심을 깨닫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일에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족한 것 때문에 결코 자신을 팔지 않는다. 다만,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을 교회들이 동참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믿음으로 ‘필요한 것’을 요청한다. 따라서 교회도, 성도도 자발적으로 ‘선교사의 필요’를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듣는 이야기들
왜 선교사들은 자꾸 요청만 하는가? 왜 선교사들은 절제되고 궁핍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선교비의 부족함을 호소하는가? 왜 선교사들은 현지인처럼 살지 못하고 호의호식하려고 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선교사들에게 실망감을 표하고 선교사를 전폭적으로 돕는 일에 헌신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종종 보았다.

선교사란 고린도전서 4:7의 말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이미 깨달은 사람이다. 선교사란 그러므로 자기의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나누어주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누는 일에 종종 필요한 것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것에 대하여, 성도와 교회는 바른 믿음과 의식을 가지고 아름답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욕구와 필요’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탐욕은 누구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었던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19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하면서 자기의 필요를 채워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함으로 마음껏 축복했다.

바울은 이미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았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했다. 그러나 만년에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몇 가지를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요청한다.

디모데후서 4:11~13,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선교사와 선교지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일할 사람 즉 일군이다. 필요한 사람이 공급된다면, 선교비가 수천만 원 공급되는 것에 어찌 비견할 수 있을까? 바울은 마가를 말하며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했다. 사람 즉 일군은 ‘사역에 유익한 존재’다. 교회는 선교사에게 유익한 것을 공급하도록 사람을 키우고, 일군을 양성함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선교사와 선교지에도 일상의 쓸 것이 필요하다
13절,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겉옷은 바울의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 때문에 잠시 맡겨두었던 것이나 이제는 필요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져오라고 한다. 반드시 필요한 것! 소위 생필품들을 공급하기를 거절할 수 없다.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비난해서도 안 된다. ‘소용되는 대로 요청하고, 능력이 되는대로 공급하는’ 상호 신뢰와 도움이 필요하다. 교회와 성도들은 선교사들에게 이런 것을 공급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선교사와 선교지에도 영적 양식이 필요하다
13절,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오늘날에는 다소 독특한 표현이다. ‘가죽 종이에 쓴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가죽 종이에 쓴 것’은 바울이 특별히 기록한 자신의 글이라고 볼 수 있고 나아가 복음을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문서나 글이 기록된 책이니 얼마나 귀중한가? 복음이 담겨있는 성경, 성경 해석 서적, 경건 서적 등 모든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과 같은 문서가 공급되어야 한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문서 선교의 위력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선교사에게 책 한 권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할 때가 있다. 여유를 갖고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 선교사 자신의 성숙과 재교육을 위한 책 한 권, 그리고 선교지의 영혼들을 일깨울 수 있는 책 한 권이 필요하다.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은 사역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공급품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

우리가 종종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던 일을 멈출 때가 있다. 선교사들의 요청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선교사들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어야 할 의무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다. 특히 파송했다고 하면 더더욱 그렇다. 파송하고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무 대책도 없이 사지에 보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두의 풀이야기를 다시 생각한다. 하나님은 식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 식물은 또 우리에게 잎이며 열매, 뿌리든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명력을 씨앗에 담겨두어 다음까지 이어준다. 복음의 원리와 너무나 똑같다. 이것이 선교의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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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명균
총신신대원 졸업, 24년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회세계선교회(GMS) 뉴질랜드지부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에는 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경일독을 이어가는 을 5년째 집필하고 있고 뉴질랜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교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