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는 둘리의 삶

승무원들은 항상 비행하기 전 브리핑을 하는데 특정 나라들은 비교적 브리핑 시간이 길어진다. 식사 시 제한 사항, 휠체어, 아이 동반 등등 승무원들이 비행 전이나 비행 중 또는 비행 후 개인 브리핑을 하거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몇 십 명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들은 식사 시 제한 사항이 있는 승객들이 10명도 안 되지만 90명이 넘는 비행들도 있다. 이럴 때는 메뉴 옵션 중 하나가 제한 사항이 있는 손님들을 위한 음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소고기 요리와 닭고기 요리가 보편적인 메뉴 옵션이라면 특정 나라들을 갈 때에는 닭고기 요리와 채식주의자용 요리가 주 메뉴로 바뀐다.

비행 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휠체어가 필요하신 분들이다. 대부분 체크인부터 공항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 시큐리티를 지나 게이트 앞까지 와서 대기한 뒤 제일 먼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다. 탑승 수속이 일반적으로 다리가 건강하신 분들보다 오래 걸리고 개인 브리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는 일반 손님들이 먼저 비행기를 나간 뒤 승무원들이 여유롭게 그분들을 공항 직원에게까지 인수 인계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을 받는다. 그러므로 개인 브리핑에서 분명 휠체어 승객분에게 당부한다. ‘이렇고 저런 부분을 알아주시고, 마지막으로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는 모든 승객들이 비행에서 나간 뒤 승무원들이 와서 도와드릴테니 꼭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만약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 오랜 시간 비행 끝에 급하게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어 하는 일반 승객들과 맞춰서 비행기를 나가려고 하다간 안전사고가 발생하거나 딜레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승무원들이 이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쓴다.

자 여기서 문제: 과연 휠체어를 타고 온 승객들이 15명이 있다면 휠체어를 타고 나가야 하는 승객들은 몇 명일까?

상식적으로는 15명이거나 비행 도중 다리가 불편해진 승객이 생겨 늘어나야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웃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분명 비행기를 탑승 과정에는 사전 탑승한 휠체어 승객이 15명 정도 되었고 짐을 위 짐칸에 올려놓지 못해 도움 받은 승객들이 정말 많았는데,
비행기가 착륙할 때만 되면 휠체어가 필요한 승객들은 5-7명 정도로 줄어든다. 그리고 이 분들을 제외한다면 그 아무도 짐칸에서 짐을 빼는데 도움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Landing Miracle(착륙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한번은 기상천외한 광경을 목격한 적도 있다. 분명 한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할 당시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서 내가 그녀의 짐을 짐칸에다가 직접 넣어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불편하니 혹시 가방에서 꺼내야 할 것이 있기에 나에게 다시 가방을 내렸다가 짐을 꺼낸 뒤 올려줄 수 있냐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착륙한 후 또 다시 Landing Miracle이 일어났다. 안전벨트 조명이 꺼지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의자를 밟고 번쩍 올라서서 짐 칸에서 짐을 내린 뒤 가볍게 내려와 유유히 나머지 승객들과 함께 걸어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약간 경쾌하고 신이 난 스테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나에게는 충격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고,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충격이 이 정도였을까?

우리 승무원들, 공항 직원들, 주위 승객들은 어떤 상황인지 모두 다 알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단지 비행기에 남들보다 일찍 타고 수월하게 체크인 과정을 거치기 위해 휠체어를 요청한 것이었고 Landing Miracle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리에 큰 문제가 없었던 그녀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는 남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불편한 분들을 위해 제공하는 호의를 악용한 사례이다.

그런 사례를 자주 목격하는 우리의 입장은 호의를 악용하는 승객 때문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할 수는 없기에 모두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런 악용하는 사람들 덕분에 오히려 승무원들이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Disembark 시간은 줄어든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겪지 않을까 싶다. 봉사활동을 할 때나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분명히 난 예수님의 마음가짐을 본받고 선의를 베풀기 위해 무슨 행동을 하는데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대한 나의 선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난 경험, 그런 부분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경험, 더 나아가서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의 선의가 정말 닿아야 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험.

영화의 한 명대사 중 그런 말이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그것을 패러디해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둘리인 줄 알아요.’라는 개그가 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안 좋은 단어 대신 둘리라고 재미있게 놀리기도 한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고, 나의 능력 안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을 만큼 건네되 그 이후의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맡겨드리는 것.

나도 사람인지라,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는 ‘내가 이렇게 까지 해줬는데 돌아오는 것이 있겠지?’, ‘이렇게 까지 했는데 교회 한번 나와주라고 진짜!’라는 식으로 내가 한 행동에 그 당사자가 고마움을 느끼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무엇이 보이기를 기대한다. 그 말인즉슨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상황에 실망할 뿐더러 내가 선의를 베풀었던 당사자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다시 한번 선의를 베풀 기회가 나한테 온다고 했을 때, 아마 처음에 보였던 선의를 보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하나님께 맡겨 드림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탰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면, 직접적으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편한 마음으로 둘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나의 작은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큰 일로 사용하시고, 나비효과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뭐 까짓 거 기꺼이 둘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크리스천으로서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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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원
로토루아에서 자라 오클랜드 대학 회계학과 졸업, 빅4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 후 현재 콴타스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MZ 뉴질랜드 청년.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지요’를 실천 중이다. 말 그대로 천지 차이인 두 근무환경에서 일어난 다사다난한 근무일지와 그 안에서 신앙인과 세상사람이 공존하는 여느 MZ청년과 다름없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