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 40년사 발간 기대

식민지 개척에는 진행 과정이 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기 위해 탐험가가 먼저 떠나고, 새로운 땅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나간 다음에는 장사꾼이 드나든다.


새로운 땅에 살 개척자가 가능성을 찾아온다. 토지와 주권 문제로 개척자는 토착민과의 갈등이 생긴다. 정부는 개척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전투를 치러 모든 권리를 종속한다.


뉴질랜드에도 파케하와 마오리 간의 갈등으로 분쟁이 커져 전투로 확산하였을 때 이미 와있던 선교사의 중재로 전투가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다.


1814년 12월 25일 성탄절에 호주 시드니에서 사무엘 마스든 목사가 베이오브 아일랜드 파이히아 근처의 오헤이 베이에서 첫 복음을 선포한 후에 뉴질랜드 북섬에 이어서 남섬까지 복음이 확산하여 2024년에 210주년을 맞이한다.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선교사가 최초로 조선에 온 것은 1889년 10월 2일 부산항에 입국한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이다. 조셉 선교사는 조선에 온 최초의 호주인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그가 1856년 8월 22일 뉴질랜드 북섬 황가레이에서 찰스 데이비스와 마가렛 데이비스 사이에서 9남 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난 사실을 잘 모른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가족을 따라 1860년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하여 성장한 뒤 조선 선교사로 갔고 6개월 후에 천연두와 폐렴으로 죽었다. 그의 죽음은 호주 장로회의 조선 선교에 대한 도화선이 됐다.


또한 영국인 월리엄 헨리 스미스와 도로시 스미스는 조선에서 구세군 선교사로 1923년부터 1940년까지 선교 사역을 하면서 조선에서 3남 1녀를 낳았다. 딸은 영동지방에서 풍토병으로 죽었다.


스미스 선교사 가족은 1940년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왔다. 조선에서 출생한 3명의 자녀에서 태어난 후손은 지금도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


뉴질랜드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한국전에서 비롯됐다. 1950년 12월 뉴질랜드군이 부산항에 도착하면서 개신교 군목도 함께 왔다. 그 가운데 구세군 군목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퍼시 스미스 사관이 있었다.


웰링턴으로 돌아와 1960년부터 한국에서 온 원양어선의 선원을 도와주며 선원회관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84년 3월 11일 한인과 함께 웰링턴 한인연합교회를 세웠다. 첫 한인교회를 시작으로 한인 이민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한인 사회마다 교회가 생겨났다. 올해가 첫 한인교회 설립 40년이 되면서 한인교회 역사를 기록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본지 2014년 226호 편집인의 창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재수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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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현
본지 발행인.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생명구원”(요한복음 20:31) 위해 성경에 기초한 복음적인 주제로 칼럼과 취재 및 기사를 쓰고 있다. 2005년 창간호부터 써 온‘편집인 및 발행인의 창’은 2023년 446호에‘복 읽는 사람’으로 바꿔‘복 있는, 잇는, 익는, 잃는, 잊는 사람과 사유’를 읽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