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켈러를 만난 것은 2년 전 꽤나 차갑고 축축했던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교회, 그리고 사명에 대해 고민하며 아파하고 있을 때에 걸려 온 사람 좋은 선배의 전화 한 통이 그 시작이었다.
‘복음 공부해 보자는 선배의 말은 단순하고 익숙해서 오히려 신선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배의 말에 나풀거렸던 마음이 그만 식어버린다. ‘팀켈러의 복음’을 공부해 보자는 것이다. 사람을 높이자는 것인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목사님의 ‘추모예배’ 소식에도 질색하며 고개를 흔들었는데, 팀켈러의 복음이라니…
그러나, 우물가의 여인에게 오셨던 주님처럼, 툴툴거리며 밀어내어도 또다시 다가오시는 그 지극함처럼 ‘복음’은 아프도록 두드려 문을 여셨다.
팀켈러의 눈으로 새롭게 다시 읽어낸 도시 속의 ‘복음’은 그렇게 친절하게 다가와 묵직하고 지속적인 파동을 일으켜 주었고, 지난 2년간 그의 책을 통해 때론 감격하고, 때론 시리도록 아파하며 ‘복음’을 만났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복음이 답이다. 복음이 밥이다. 복음이 힘이다.
‘청년들을 살리고 싶어요’라고 울었는데, 하나님은 ‘복음’으로 답을 주셨다. 무엇을 먹일까 고민할 때 ‘복음’을 먹이라 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복음’ 안에 있음을 알게 하셨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 팀켈러에게 감사한다. 그의 유산을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얻게 되어 설레고 기쁘다. 팀켈러의 북 리뷰를 통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복음’을 함께 맛보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설레임이 되살아나길 소망한다.
첫 번째 책 ‘센터 처치’를 선택하다
아니, 이 책이어야만 했다. 800페이지 꽉 찬 분량이지만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새기고 싶을 만큼 정교하게 압축된 걸작이다. 동시에 팀켈러의 책들을 여는 열쇠이며 현관 같은 책이다. 그가 읽어내고 전한 ‘복음’이 자세하게 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센터 처치는 3개의 묶음 즉, 복음, 도시, 운동으로 나뉘어 있다. 복음을 도시에 전해 운동을 일으키자는 팀켈러의 신학적 비전은 요약되고, 구체화되어 있다.
첫째 묶음 ‘복음’
복음을 알았지만 몰랐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고 있었다.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이리 기쁠 줄은 몰랐다. 복음은 무엇인가? 아니, 그전에 복음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복음은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머리로는 “예수님이 나를 받아 주셨으니 바른 삶을 살아야지.”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의 삶(마음과 행동)은 “나는 바른 삶을 살고 있으니 예수님이 나를 받아 주신 거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동시에, 전도의 길을 막는다.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람이 되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인다.
복음은 공식이 아니다. 복음은 만병통치약처럼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제시되지 않는다. 바울은 복음을 다양한 방식(다양한 순서, 논증, 강조 등)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전했다. 복음은 단 하나의(singular) 메시지이지만, 결코 단순한(simple) 메시지가 아니다. 복음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복음은 모든 문화와 개인의 특정한 소망이나 두려움, 우상들을 다룰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상 복음은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복음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가져온다. 놀랍게도 그 이유는 복음이 소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복음은 나의 밖에서 일어난, 노력이나 행위나 자격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일어난 그 어떤 일이다.
팀켈러는 1.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기쁜 소식이다. 2.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선포하는 기쁜 소식이다. 3.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이어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소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가 행한 어떤 것이 될 수 없고, 우리를 위해 행해진 은혜다.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다. 복음은 우리가 무엇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의해서 무엇이 성취됐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쁜 소식, 복음이 전해질 때 개인과 공동체에 나타나는 3가지 변화다.
Upside-Down 왕이신 예수님께서 종이 되어 섬기셨다는 이야기는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섬김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부요한 자가 가난한 자를 섬기며,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는 공동체다. 이런 가정,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Inside-Out 도덕적인 어떤 규칙들을 지키거나, 외적인 성취나, 혹은 어떤 자격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다. 조건없이 나를 받아 주시고 은혜로 무한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내면의 평안과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내면의 평안과 감사가 가득 차 흐르면 인생의 거친 파도도 넉넉히 넘어가게 된다.
Forward-Back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미래의 소망을 오늘부터 누리며 살게 하고, 오늘의 초라함에서 거뜬히 일어나게 한다. 동시에, 이 땅을 향한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오롯이 성장하게 한다.
팀켈러는 위의 세 가지 일이 모든 성도들 개인과 가정,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자극받고 갱신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종교로 다시 미끄러지게 된다며 특별히 종교/도덕주의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비종교인들보다 종교/도덕주의자들이 배나 더 위험할 수 있다.
이들은 도덕적 의를 쌓아서 하나님의 보상을 요구한다. 동시에, 자기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순간 미끄러져서 종교/도덕주의자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위험하다. 가나안 성도라든지, 낙심자라든지 ‘교회 밖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화된 성도들에게 신물이 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진짜 복음을 오해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종교/도덕주의자들은 공포와 교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처벌의 공포(어려움을 겪게 될 거예요)와 교만한 마음(더러운 거짓말쟁이가 될 거예요)이다. 오직 바른 복음만이 교만과 두려움을 모두 제거한다.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얻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복음은 평생 돈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준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할 때에 돈에 대한 염려와 욕심을 이길 힘을 갖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상당한 숫자의 성도들이 진정으로 복음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는가? 팀켈러는 우상숭배를 경고한다. 우상숭배는 광범위하고 보편적이며 거침없이 교회 안에서조차 행해지고 있다. 무엇이든 우리의 신(우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정, 성공, 일, 경력, 연애, 재능, 심지어 복음 사역도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에게 큰 의미와 기쁨이 된다면 바로 그것이 우상이다.
루터의 말은 무척이나 아프다.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다른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그의 은총만 구하는 이들은 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며, 진정으로 우상숭배를 할 뿐이다. 그들이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종교가 아닌 복음, 공포가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 교만을 깨뜨리는 복음 안에서의 평안, 기후와 금융,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우리를 구할 능력은 다름 아닌 복음에 있다.
팀켈러의 복음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인이며,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