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남의 일은 사흘이면 잊어버린다”라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손해되는 사소한 것까지도 철저하게 무감각해서 무관심이고 무반응이다.
진리와 양심에 따라 또는 법과 양심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말조차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 사건들이 있다. 공정과 상식을 입으로 말하지만 삶은 오히려 이를 자기 합리를 주장하는 도구로 삼는다.
사회적인 윤리와 도덕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 이익과 손해의 들고나는 셈에서는 인간성마저 사라진다. 자본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종교, 예술, 체육 등 모든 영역을 집어삼켜 버렸다. 결국 돈은 종교와 권력,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통제하고 조종한다.
성공과 건강, 그리고 행복과 우애보다 돈을 우선 가치 순위로 두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을 버리고 돈을 선택한 자의 최후는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와 성격은 평생 변하지 않는 것처럼 돈을 추구하는 자의 욕심은 바꾸지 않는다.
중국 사기를 쓴 사마천은“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천 배 부자면 고용되고, 만 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라고 한다. 한국은 미국보다 빈부격차가 앞서는 세계 1위 국가이다. OECD에서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에서 0.4이면 사회 불안을 가져오는 경계점이다.
한국은 얼마전에 0.406으로 상위 10%가 전체 소득 49.19%에 이르러 미국보다 앞선다. 위험한 경제 상황이고 사회 현상이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다. 내버려두면 사회 붕괴나 파멸 현상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있다.
전관예우라는 관행은 이익으로 이어지고 개인 자유와 인권에도 법과 양심보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실시한 계약직이 경제 상황이 나아져도 계속 이어져 심각한 빈부 격차를 가져오고 있다. 기업에서도 정규직을 대신하여 계약직을 고용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이익을 보고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고질적인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보다 잘 못 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람은 권력과 돈에 때로는 아부하고 기죽고 주눅들고 비굴하여 야비하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돈에는 천박하고 잔인한 근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제국은 이익에 따라 사는 사업이라면 천국은 구원하는 사역이다. 사업은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사역이 역사가 된다. 이름마다 이야기가 있듯이 사역은 하나님 역사로 남는다. 한 해 동안 나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했는지 반대로 주의 복음을 위한 사역을 했는지 드난 셈을 할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