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현재 뉴질랜드에서 유일한 한인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사 대표이며, 또한 ‘마운트이든 교회’ 담임인 이승현 목사의 사모로, 협동 목사로 뉴질랜드의 전 지역에 대한 문서선교와 영혼구원에 주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고 아름답게 다하고 있는 분이다. 이외에도 부군과 함께 저서로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등 여러 시집을 발간하였다.
저자는 2005년 1월 크리스천라이프 창간호부터 시작하여 무려 12년 동안 게재한 ‘라이프에세이’의 글들을 추려서 ‘그 길을 가다’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과 모범적인 결혼 생활, 그리고 자녀에 대한 사랑과 지혜로운 양육 등, 교회의 목회자 사모로서 또한 다양한 삶의 세상살이에서 마주치는 내용들에 대해서 저자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마치 신앙고백과도 같아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산뜻하고도 훈훈한 감동과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그의 마음을 이렇게 담고 있다.
“라이프에세이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진지하고 너그러워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글의 주제와 글의 주인공들이기에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때로는 상처받은 이들의 눈동자에서, 때로는 담장 아래 피어난 작은 화초의 비명 속에서, 때로는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 속에서, 때로는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읽어 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사람이냐? 미국행이냐?”
저자는 어린아이 시절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사람 구실 못 할 것 같으면 데려가시고, 살려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과 은밀한 거래를 했다. 딸도 모르게 하나님께 바친 어머니의 서원기도였다.
신학 석사를 마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신학지식을 전하는 신학박사가 되고자 유학을 꿈꾸고 있던 중 마침내 미국 유학의 기회가 왔다. 그런데 저자는 당시 중보기도 팀에 전도사로 함께 있었던 현재의 부군인 이목사의 믿음과 선한 성품을 알고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전도사로 사역하던 이목사는 생활이 어려웠으나 저자는 이런 것을 마다치 않고 좁은 길을 택하였고, 지금은 오히려 넓고 빛나는 길을 걷고 있다.
“내가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저자의 젊은 시절의 꿈은 나라를 구한 요셉과 같은 훌륭한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국회에 금배지 달고 들어가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도 날뛰던 세월속에서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했고, 세상의 모든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도 했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앞장서서 저들을 대변하고 저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삶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한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세상에서 정의를 외치고 세상의 불의에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름을 날려 본들, 커다란 프로젝트를 이루어 본들, 숫자에 묶여 있는 성공을 했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큰일은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요(영태 이야기)”
저자가 한국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 ‘영태’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 학생이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하고 싶어서 학교 수업을 자주 무단으로 빠지다가 어느 날 가출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 학교에선 퇴학을 시킨다고 하니 그 학생의 어머니는 애간장이 타서 당시에 교회의 전도사였던 ‘영태 잡는’ 저자에게 아들을 찾아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여러 번의 가출로 경찰서에 잡혀 있는 영태를 찾아오기도, 먼 지방으로 도망가 숨어 있던 녀석을 잡아 오기도 하여 일명 “영태 잡는 도사”가 되어 있던 저자는 그의 친구들을 통해 압구정동 어느 카페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압구정동 모든 카페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녀석이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앞 어느 어스름한 지하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는 ‘영태’를 찾았다. 미성년자를 들먹이며 사장에게 공갈협박(?)을 하면서 영태를 잡아 오게 되어 ‘영태 잡는 도사’에서 ‘영태 잡는 전도사’로 등급(?) 하기도 했다.
위 내용은 성경에서 나오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에 비유된다. 많은 양무리 중에서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산골짜기를 찾아다니며 마침내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의 기쁜 마음이다. 또한 ‘돌아온 탕자’와도 비유된다. 주님은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 사람이 교회로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어디메서 왔소?”
“우리 집에 손님이 오기만 하면 저의 어머니가 제일 먼저 묻는 물음입니다. 그날도 손님들이 오자 당신이 먼저 반가이 맞이하면서 묻습니다”. “네, 북쪽에서 왔어요” “아이구, 반갑소! 북쪽 어디메서 왔소? 난 황해도에서 왔수다.” 북쪽에서 왔다 하니 당신처럼 이북에서 온 피난민인 줄 알고 화들짝 놀라며 너무너무 반가워하십니다.
“북쪽 알바니에서 왔어요.” “내레, 처음 듣는 동넨데 피앙에 있는 동네오?” “엄마! 이북이 아니라 다리 건너 북쪽 동네에서 왔다는 거에요.” “뭐야야? 북에서 왔다고 하잖아, 저이가?”
저자의 어머니는 북에 두고 온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며 사셨다. 얼마나 그리우면 누군가 ‘북쪽’이라고 말하면 오직 ‘이북’이라고 여겨지는가! 어머니가 그리워하며 간절히 가고파하는 이북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복음통일 날이 속히 오도록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름값대로 살면 좋으련만”
“우리 부부도 두 아이 낳아 이름값대로 살라고 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빛내라고 하여 ‘한빈’이라 이름 짓고, 딸아이는 예수님을 빛내라고 ‘예빈’이라 이름을 지어 큰 비전을 심어 주었습니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이름값대로 살라고 가르치면서, 때때로 만나는 이들에게 이름값대로 살라고 당부하면서, 나는 내 이름값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부끄러워 슬그머니 말끝을 흐리고 맙니다… 하지만 이제 이름값대로 살려 합니다. 공작이 꼬리를 활짝 펼 때 가장 아름답듯이 이름값대로 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기에 ‘베풀 장’ ‘밝은 명’ ‘사랑 애’, 밝은 사랑을 온 누리에 베풀면서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저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을 한가지씩 가지고 있다. ‘베드로’ ‘바울’ ‘다윗’ 등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았던 인물들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새기며 알려준다. 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빛을 비추어 달라고 한다.
저자의 보배와 같은 삶의 고백인 133개의 ‘라이프 에세이’를 독자들에게 선물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인내심과 신앙의 용기를 선물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