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이민

수많은 한국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종교개혁의 흐름을 든다면 당연히 장로교회가 주를 이루기에 츠빙글리와 칼뱅으로 이어지는 개혁교회 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흐름을 들 수 있다.

더불어서 한국교회와 또 밀접한 종교개혁의 흐름을 들라면 영국국교회, 요즘의 말로 성공회(Anglican)이다. 아마, 한국교회와 성공회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많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만 우리가 지키는 절기가 성공회와 무관하지 않다. 분명 절기와 상관이 없이도 한국교회 속 성공회의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다.

성공회가 한국에 선교한 역사가 길고, 지금도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뉴질랜드에서도 최초의 선교사가 성공회 사제였고, 그렇기에 현재까지 성공회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 교단이다. 그러니 뉴질랜드 땅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 우리들이 성공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이유 말고도 필자가 성공회가 한국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성공회와 청교도의 갈등” 때문이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독일과 스위스를 거치면서 많은 개혁교회의 흐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 안에서 종교개혁은 한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은 다른 유럽 지역에서 나타난 개혁교회의 종교개혁의 모습과 다른 양상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우리가 아는 개혁주의 중심의 종교개혁에서는 제후들과 새로운 지식층들, 그리고 자유도시에서 부를 이루게 된 상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흐름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영국의 종교개혁은 왕실 중심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왕실의 갈등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실 중심의 종교개혁으로 국교회가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개혁을 주도한 것과 동시에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다른 유럽의 개혁교회의 흐름과 같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교도” 운동이다.

청교도와 영국국교회의 갈등을 설명하는 김도훈의 글이다. “1630년대 잉글랜드 청도교들은 국왕 찰스 1세와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엄 오드의 친 로마가톨릭적 종교정책인 라우디안 종교정책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탄압을 받았으며 이에 반발하던 많은 청교도 목회자들이 설교 금지 처분을 당하거나 파문당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즉, 청교도인들의 영국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미국, 그 당시 표현으로 뉴잉글랜드로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서 이주하게 되었다.

영국국교회의 탄압에 본격적으로 이동한 청교도들은 1630년대부터 163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주를 하였고, 약 13,000명에서 21,000명가량이 새로운 잉글랜드를 꿈꾸며 미국 땅으로 이주하였다. 그중에서 76명은 청교도 목회자였으며, 그들은 신대륙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가나안 땅이라는 고백 아래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비전을 가졌다. 바로 “언덕 위의 도시”에 대한 꿈이다.

존 윈스롭 (John Winthrop)은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우리는 언덕 위의 도시처럼 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눈이 우리를 향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 나오는 모세의 축복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면 언덕 위의 도시는 복의 통로가 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언덕 위의 도시는 저주의 통로가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언덕 위의 도시를 꿈꾸며, 종교적 이상향을 향하여 이민을 떠난 청교도의 역사는 교회력 안에서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통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큰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탄절을 기점으로 하는 대림절과 주현절, 부활절을 기점으로 하는 고난주간과 오순절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키고 있는 절기 가운데 많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지키는 절기 중 하나가 추수감사절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추수감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관련이 없는 절기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절기는 청교도 이민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절기이고, 그 영향이 한국의 모든 교회에 미친 것이다.

비록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1930년대 청교도들의 본격적인 이주보다 앞서 있지만,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도 청교도와 함께 뿌리를 공유하던 공동체였다. 1630년대 이전에는 청교도들이 두 파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급진적인 분리를, 다른 한쪽은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였다.

지금의 추수감사절의 시초가 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은 급진적 분리를 이야기하며 교회는 절대 국가교회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훗날, 영국국교회 안에서 개혁을 외치던 온건한 청교도들도 더 이상 국교회의 그늘 아래에서는 개혁이 어렵다는 결단 하에 1630년대에 이주를 하였다. 온건하게 영국국교회 안에서 교회를 개혁하려 했던 청교도들도 앞에서 먼저 떠나온 급진적 청교도들과 신대륙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추수감사절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은혜로우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전국 국경일’로 선포한 후부터 구체적인 날짜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결국 미국과 캐나다의 국가 공휴일이 되었다. 즉, 한국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종교개혁 당시의 이민자의 결과물이다.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내용을 찾으며 “언덕 위의 도시”의 꿈을 잊지 않기 위한 이민자들의 고백이 추수감사절이다.

이제 다음 마지막 회에서는 간단하게 현대 교회사 속의 사건을 다루고 짧지만, 이제까지 다룬 내용을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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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균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 신대원, 일반대학원 졸업(한국교회사 전공). 오타고대학교 박사(선교학, 이민자 신학, 종교사회학 전공). 파머스톤노스 한마음교회 담임. 알파크루시스 강사. 현지교회와 이민자를 연결하는 꿈을 가지고, 선교와 이민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한다. 관심분야는 선교학, 이민자 신학, 한국교회사와 아시아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