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가 떴네요!

믿음은 선택의 문제이다. 믿음이 있고 없고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택하느냐 아니면 나 자신의 유익을 택하느냐의 문제로, 곧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내가 무엇을 가장 우선에 두고 사느냐 하는 문제이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뜻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을 택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우상에 절하지 않으려고 풀무불을 택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았다. 이것이 믿음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면 망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늘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뜻을 양보하고 살아간다. 주님도 “나를 따르려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땅까지도 버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선순위를 바꾸지 말라는 말씀이다. 다른 것을 버리라고 하신 이유는, 주님을 선택하는 이것이 살길이고 더 좋은 것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버릴 때 비로소 100배나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특별히 주일성수를 위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군대생활 3년 동안 구타와 생명의 위협과 극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한번도 주일성수를 어기지 않았다. 내 평생 억만금을 잃어도 주일성수는 반드시 지키고 있다. 

주일성수로 인하여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일이 있었다. 뉴질랜드인 영어학교에서 일을 할 때였다. IMF가 터지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서 기독교 방송국과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는 방송국에서 연수 학생들을 모집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었기에 수억 원을 내서라도 방송국과 일을 하려고 했다. 나는 가진 것도 없었고 아는 사람 한 명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엄청난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 미래가 보장되는 특별한 기회였다. 

첫 번째 단기연수생을 모집했을 때에 기대 이상의 결과가 있었다. 약 70여 명의 학생을 모집했다. 6개월 뒤 다시 단기연수생을 모집하였는데, 그때는 바로 뉴밀레니엄의 시작인 2000년도였다. 그 당시 뉴질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였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뉴밀레니엄의 첫날을 뉴질랜드에서 보내려고 밀려 들어왔다. 뉴질랜드에 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전에 비행기 표를 예약하지 않으면 표를 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도 6개월 뒤에 연수 올 학생들을 위해 넉넉잡아 120석의 표를 어렵게 예약을 해두었다. 12월이 되어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예약한 대로 약 120여 명을
모을 수 있었다. 한꺼번에 모두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30명씩 4차에 걸쳐서 항공권을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출발하기 바로 직전, 다시 한번 티켓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티켓을 예약할 때에 그만 실수로 2000년 달력을 보지 않고 1999년 달력에 맞추어 예약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세 그룹은 모두 일정에 문제가 없었으나 한 그룹 30명은 한국에 돌아가는 도착 시간이 주일날 이른 아침이었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큰 문제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지켜왔던 나에게는 정말 큰 문제였다. ‘주일 새벽이면 도착 후 바로 교회 가서 예배드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에 가겠으며, 더구나 지방에서 아이들을 마중 온 부모님들이 어떻게 교회에 갈 수 있겠나? 내 신앙양심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하면서 뭇 사람들에게 주일을 못 지키게 하다니, 이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여행사 사장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월요일에 출발할 수 있는 티켓을 구해 달라고 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티켓을 한 장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30명의 학생, 그 부모님과 가족들, 연수 출발할 날만 기다리며 기대에 차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거기다 이제 막 방송국과 함께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 더 이상 방송국과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일성수를 하지 못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당연히 취소되어야 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30명 티켓, 취소해 주세요. 모든 손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30명의 티켓을 취소하고 하루 동안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있었다. 다음 날 여행사 사장으로부터 너무나도 놀라운 전화가 왔다. “선교사님! 월요일에 출발하는 비행기표 30장을 구했습니다.”

“아니 한 장도 구할 수 없었던 표를 어떻게 30장을 구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어디서 특별기가 뜬 것 같습니다.”

나는 또 한 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것으로 채워 주시는 좋으신 우리 아버지를 마음껏 찬양하였다.

용서의 보상, 5천만 원
인간은 돈 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가 되곤 한다.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신앙인들조차도 돈 앞에서는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학교를 다녀간 한 자매가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차려서 성공적으로 운영을 했다. 학생들의 수가 증가하다 보니 학원을 확장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같은 교회 안수집사님이 운영하던 영어학원이 매물로 나와 있어 인수하였다. 본인 학원을 먼저 처분하고 새로운 학원을 인수했어야 하는데, 같은 성도이고 하니 믿고 먼저 인수 계약을 했다. 

그런데 쉽게 처분될 줄 알았던 본인 학원이 팔리지 않고 잔금을 치러야 할 날짜가 되었다. 이미 계약금으로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받아 지급을 한 상태라 애가 탔다. 조금 날짜를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으나 안수집사라는 사람은 법에 따라 처리를 했다. 자매는 고스란히 1억 원을 날리고 깊은 상처를 안고 한동안 기도원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이게 인간들의 모습이다. 돈 앞에서는 하나님도 믿음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돈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돈 많은 부자가 되려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다. 이게 현실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며 내 이익을 챙기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신다.

나는 목회자가 되라는 어머니의 서원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잠시 방황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여러 번 경고의 신호를 주셨으나 끝까지 외면하다 교통사고로 전 가족이 죽을 뻔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크게 치셨다. 무릎이 세 조각이 나서 대수술을 받고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으나 큰 장애를 갖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해달라고 찾아왔다. 20대 청년이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었으니 형사 입건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청년의 어머니가 부산에서 서울로 찾아와서 애원하였다. 아들이 합의가 되지 않으면 감옥에 가게 생겼으니 제발 합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병원사무장은 이 정도로 장애가 생기면 합의금으로 최소 3천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법에 따라 본인이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다. 그들이 이런 큰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사고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패역한 나 때문에 일어났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어떤 보상에도 관심이 없었다. 영적으로 보면 그 청년이 가해자가 아니라 내가 가해자였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하나님에게 징계 받은 것을 인간에게 보상받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아내도 다리의 부상 때문에 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어서 부득불 간병인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가해 청년의 어머니를 불러 보험회사에서 지급해 주지 않는 간병비만 내도록 하고 한 푼의 보상도 받지 않고 합의해 주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나의 결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후유증도 있을 것이고 장애도 있는데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이냐며 난리였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징계를 인간의 어떤 보상으로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나로 인해 고통받은 가해자를 위해서 기도했다.

가해 청년의 어머니는 합의서를 들고 병원을 나서면서 천사를 만났다고 눈물로 인사를 하고 갔다. 평생 은혜를 잊지 않고 자주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로 한 번도 그분들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보험회사에서 보상 처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은 약 700만 원이었다. 나의 장애는 현재 수입으로 따지면 이 금액 이상은 절대로 보상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금액으로는 앞으로 발생할 후유증에 대한 치료비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여러 가지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서 보험회사로부터 무려 5천만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도록 해주셨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징계를 인간에게 보상받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몇 배로 보상해 주셨다.

이전 기사청교도와 이민
다음 기사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이 은태
뉴질랜드 Assembly of God Bible College 졸업. 오클랜드 인터내셔날처치 담임목사. AEC 및 다니엘캠프장 이사장. 저서로는 ‘이른 비의 기적’과 ‘늦은 비의 기적’을 통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물질의 법칙’을 알려 주는 재물이야기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