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 : 계시

계시의 의미와 정의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심적 핵심을 꼽는다면 신 존재와 계시에 대한 인식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신’이라는 ‘존재(실재, reality)’에 대해 논증해 왔습니다.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것’, 혹은 인간의 감각 외부에 무엇인가 ‘실재’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존재의 근원을 ‘관념’으로 찾으려 했습니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로서의 존재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으로 나눠지며, 그것에 대한 의미를 인간사회에 적용했습니다. 중세 철학에서는 형이상학을 초월적 실재론(transcendental realism)이라고도 하는데, 신의 형이상학적 실재를 만물이라는 유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철학에서 ‘신’이라는 ‘존재(실재)’를 인식하는 데 실재 배후의 대상이 불명확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이 인간으로 하여 그것을 감각할 수 있도록 촉발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신을 인식함은 신이 창조한 만물의 유비를 통해 인식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과학의 발전과 물리학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과학철학으로서의 존재론이 등장합니다. ‘과학적 존재론’이란 관념과 사유의 성찰이 아닌, 존재 자체를 과학적 관찰을 통해 밝혀내는 일이며 존재와의 실제적 만남, 또는 경험에 기초한 존재적 관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자연종교’에 반해서 ‘계시종교’라 합니다. 자연종교는 인간 스스로 구원의 방법을 찾아보고 연구하지만, 계시종교는 인간의 구원적 삶과 영원의 문제를 신이 계시하여 주신 가르침에 근거하여 믿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존재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는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해 하나님과 피조물이라는 관계론적 지식을 전제하에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 신학에 있어 계시자는 하나님 한 분이지만 계시는 두 지식, 두 양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구분됩니다. 특별 계시는 구원에 관련된 언어적 계시를 의미합니다. 즉 신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일반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만물 가운데 드러낸 것으로 자연의 현상적인 것과 인간의 이성 등을 말합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전체 맥락에서 하나님은 ‘자연 세계’, ‘인간의 역사’, 그리고 ‘사회’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타락 이후 눈이 멀어 일반 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는데 불완전하기에 이성적 노력이 아닌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에 그 기초를 놓습니다.

벌코프는 ‘계시(revelation)’라는 말을 라틴어 ‘레벨라티오(revelatio)’에서 온 ‘드러남,’ ‘나타남,’ ‘열어 밝히다’ 등으로 나타낸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계시를 의미하는 ‘갈라’라는 단어는 ‘벗고 있는’이란 뜻으로 이를 계시에 적용하면, 시야를 가리고 있는 ‘덮개를 벗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응하는 신약성경의 용어는 ‘아포칼륍토’로 뒤에 있는 것이나 아래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막 또는 덮개를 제거하다’,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폭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파네로오(φανερόω)’는 ‘명백하게 하다’, ‘시야에 드러내다’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참고로 신약성경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하나님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요 12:45, 14:7, 20, 골 1:15). 그리고 계시를 인식하는 데 초자연적(특별) 계시와 자연(일반) 계시를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건들의 자연적인 과정에 개입하는 초자연적 계시들이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특별 계시’이든 ‘일반 계시’이든 더 나아가 ‘역사적 계시’이든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 해석의 출발점입니다. 이는 만약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하신다면 인간이 아무리 신적 계시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도 이는 불가능하며, 더 나아가 어리석은 행동이라 합니다.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재공포하고 성령을 통해 교정하며 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신적 계시가 드러나면 인간의 이성은 그것을 인식하고 더 풍성하게 드러내고 설명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신학이 하나님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세상의 전통들, 즉 철학과 과학 등과 공명하며 세상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존재적 설명을 해주는 실천적 입장에 서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적 지식(natural knowledge)과 계시된 지식(revealed knowledge)
분자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는 ‘신학이란 무엇인가?’ 7장에서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용어를 ‘자연적 지식’과 ‘계시된 지식’이라 표현하며, 계시의 모델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칼 헨리(Carl F. H. Henry, 1913〜2003)의 ‘교리로서의 계시’입니다. 이는 오랜 기간 수정 보완을 거쳐 기독교 신앙 안에 자리 잡은 모델로 역사적으로 보수주의, 복음주의, 가톨릭 등에서 신조로 가르쳐 왔습니다. 맥그래스가 사용한 ‘교리로서의 계시’라는 말은 ‘명제적(propositional) 계시’를 의미합니다.

이는 성경의 역사성을 수호하려는 것으로 성경의 진리를 보편적이고 참되고 적용할 수 있는 명제들로 결정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은 계시를 매개하는 것을 성경으로 보았지만, 가톨릭의 신스콜라주의 사상가들은 전통이나 교회의 교도권(magisterium)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신정통주의자 ‘에밀 부르너(Emil Brunner, 1889〜1966)의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입니다. 이는 중간에 어떠한 매개체를 불필요로 하는 계시 모델입니다. 유대 철학자 마틴 부버의 사상에 기초를 삼은 것으로 ‘나와 너’ 및 ‘나와 그것’의 직·간접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모델입니다.

부르너에게 계시는 하나님에 관한 단순한 정보가 아닌 인격적인 현존을 전달하는 일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계시의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이 오직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주장합니다.

셋째,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의 직관적 계시라고도 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계시’입니다. 이는 경험이 되지 않으면 종교가 아니라고 까지 언급한 모델로 모든 계시는 계시를 받는 존재가 계시자의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상입니다.

즉 직관을 가하는 존재의 본질성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종합되고 파악되며, 계시자의 근원적이며 독립적인 행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정 부분 신학이 관찰되고 증명된 세계를, 혹은 의미론적이고 경험적 신앙을 주장하기 때문에 맥그래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부합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넷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 1928〜2014)의 ‘역사로서의 계시’입니다. 이는 계시란 역사를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고 역사 속에서 진행되고 맨 끝자락에서 완성된다고 본 모델입니다. 기독교 계시의 정의를 어떤 특수한 해석 내지는 개인적인 실존적 경험이 아니라 역사 자체로 본 것입니다.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신의 현현(顯顯) 방식에 따라 직접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위로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계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계시 역사의 끝에 가서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현시와 달리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는 공적이고 보편적으로 알 수가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나사렛 예수의 운명 안에서 역사의 종말이 최초로 실현되었지만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주장합니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계시의 중심 사건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맥그래스의 주장의 핵심은 기독교 신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우리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기독교 밖의 과학(이성) 중심의 관찰 이론과 기독교 계시론적 이해를 이원화시키기보다는 세상의 전통들, 즉 과학, 철학, 역사 등과 공명하며 세상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설명을 해주는 실천적 입장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난 창조 세계의 ‘관찰,’ 그에 따른 과학적 ‘이론(교리)’, 그리고 신앙의 삶에 나타난 계시에 대한 ‘설명(세계관)’으로 해석해 가는 방식입니다.

출처: 김용규,『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IVP 출판사, 2021)을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통해 책에서 다뤄지는 기독교 신학의 내용을 필자의 관점에서 재 인용과 재 해석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