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고교졸업 50주년 자축연
지난 2017년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0년 되는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서울에서 졸업 50주년 자축연이 있었습니다. 큰 행사가 기획되고 또 성공적으로 열리려면 항시 수고를 자청하고 나서 헌신적으로 몸과 마음을 던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50주년 자축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몇몇 동창의 희생적인 노력 덕택에 국내외의 많은 동창이 이날을 기다렸다가 참석하였고 자축연은 말 그대로 흥겹고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1967년 2월에 360명이 졸업했는데 이날 참석한 동창이 200명 가까웠습니다. 부인과 같이 오는 모임이었으니 거의 4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식장을 가득 채웠으니 대단한 모임이었습니다. 까까머리 홍안의 소년들이 3년을 같은 학창(學窓)에서 지내다가 헤어진 뒤 머리에 허연 서리가 내린 노인이 되어 만나게 만든 반백 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너무도 긴 세월 뒤의 만남이기에 어떤 동창은 얼굴은 낯이 익어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명색이 동창인데 오랜만에 만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민망한 사태를 방비하기 위해 주최 측이 입구에 이름표를 준비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졸업 후 서로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만나면 서로 이름표와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자네가 과연 ㅇㅇㅇ이냐고 손을 붙들고 흔들다가 결국은 끌어안고 울음보를 터뜨리는 장면이 사방에서 연출되었습니다.

주최 측이 준비한 식사는 생각보다 풍성하였습니다. 식사와 더불어 정담을 나누는 시간이 끝나자 여흥의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그 옛날의 장난꾸러기 고등학생의 동심과 우정이 회복되었기에 순서 하나하나가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의 압권은 네 명의 동창이 부인들과 함께 나와 입을 모아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합창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약속이라도 했듯 모두가 일어나 열렬히 손뼉을 치며 성원했습니다. 이는 결코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네 명 동창의 우정
학창 시절에도 그랬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이들 네 명 동창의 변함없는 우정은 모든 동창 사이에서 유명했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너무 좋았기에 부인들끼리도 친해져서 부인들 사이도 남자들 못지않게 좋았습니다.

그랬기에 졸업 50주년 행사를 주관하는 동창들이 이들에게 부인들과 같이 나와 행사 중에 노래를 한 곡 불러달라는 특별 요청을 한 것입니다. 네 명 중에 두 명은 한국에 있었고 한 명은 미국에 한 명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쾌히 응낙하고 그해 시월에 한국에 모였습니다. 무슨 노래를 할까 서로 의논하다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같이 모인 네 부부는 매일 같이 만나 회포를 풀고 또 노래 연습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엔 커다란 슬픔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던 친구 하나가 바로 얼마 전에 건강진단을 했는데 뜻밖에 폐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암의 전이 상태가 아주 안 좋았기에 그들의 슬픔은 컸습니다.

네 부부가 같이 모인 것은 사실 50주년 행사보다 오히려 아픈 친구를 만나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 부부는 모일 때마다 아픈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또 노래 연습도 했습니다. 이들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택한 이유는 그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네 동창에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특별했던 까닭
노래를 연습하다가 ‘너’라는 가사가 나오면 모두가 아픈 친구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다가 자연스레 그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곤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다가 그만 눈물을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연습해서 50주년 자축연에 나온 네 부부의 노래였기에 어느새 이들의 사연을 알아버린 동창들이 그렇게 열렬히 박수로 성원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올 시월에는 여러분이 아끼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듣고 또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가 좋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면 아픈 친구를 위해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를 하던 네 부부를 생각하시면 더욱 이 노래가 좋아질 것입니다. 아니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아내나 남편을 생각하며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의 귀중함을 잊어버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노래 따라 기도 따라 다가온 기적
50주년 자축연이 끝난 뒤 네 친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친구는 한국에 남고 한 친구는 미국으로 가고 한 친구는 뉴질랜드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헤어졌지만 아픈 친구를 위한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뉴질랜드로 기쁜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친구들의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아니면 다같이 목놓아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 덕분이었을까요? 길어야 6개월에서 일 년 밖에 못 살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아픈 친구의 암세포가 거의 사라져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괴롭고 지루한 4년여의 암 투병을 옆에서 지켜본 담당 의사는 단지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친구의 손을 잡으며 축하했다고 합니다.

기적을 체험한 네 친구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비록 떨어져 살고 있지만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정오(뉴질랜드 시각)가 되면 네 명의 칠십 노인들은 그룹 화상통화로 모여 한바탕 수다를 떨면서 다가올 졸업 60주년 자축연 때는 다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를 부를 것을 기약하곤 합니다.

전쟁과 기후 변화의 재앙으로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힘들 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시며 현재를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추신: 폐암에 걸렸던 친구는 2023년 현재까지도 건강하게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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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