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발그림자>를 읽고

송세윤 청년<마운트이든교회>

전쟁의 상처와 이야기는…흐르고,흘러야 한다

한국 정전 협정 70주년(1950.6.25-1953.7.27)을 맞아 쓰인 단편소설 <발그림자>은(461호) 대화 주체인 요한과 한스 위주로 흘러가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혜자 도슨 부인, 즉 장혜자 할머니다. 요한과 한스의 대화와 시선, 그리고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바라본 전쟁을 겪고 참전 용병인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이민을 간 장혜자 할머니의 삶을 그려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삶이 어떻게, 어떠한 매개체와 인물을 통해, 그다음 세대인 요한과 그의 아내 윤지의 삶에 흐르고 스며드는지 보여주는 단편소설이다.

한국전쟁 참전 용병이었던 한스는 요한이 담임목사로 청빙 되는 것을 반대한 위원회를 설득하기 위해 한국전쟁, 장혜자와 남편 맥 이야기를 꺼낸다. 장혜자의 이야기가 그녀와 함께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방인 처지의 한스도 처음에 요한이 아시안이라는 서류를 보았을 때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멈춘 건 그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한스에게 주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한스가 매개체가 되어 그들을 이어주면서 혜자의 이야기가 흘러 내려가는 물꼬를 터준다.

‘영원히 기억하리’ 이 문구가 새겨진 화강암이 도브 마이어 로빈슨 파크에 있다. 가평 전투가 일어난 가평에서 가져온 이 돌은 참전용사들과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한국 전쟁은 흔히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 표현된다.

특히 그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큰 승리로 취해 있었고, 한국전쟁은 정전으로 인해 뚜렷하게 미국의 승리라고 보기에도 모호했기 때문이다. 실제 내막보다 패권적인 미국이 재구성한 이 전쟁의 이야기를 후손에게 전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그 당시 이민자들은 말한다.

다행히도 소설 처음에 장혜자가 요한을 찾는 것, 장혜자 본인이 죽고도 가끔은 찾아와 달라는 부탁, 오빠가 준 ‘평양’이라 음각된 가위를 단번에 요한과 윤지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것, 아이의 탯줄을 그 가위로 자른 것.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와 함께 죽지 않고 다음 세대인 요한, 그리고 그다음 세대까지 흐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주인공 장혜자의 내면은 어떠할까
단편소설 특성상 정신병리학적인 증상과 그에 따른 행동반응을 모두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작가가 가정하고 정의한 그녀의 특성과 행동을 기반으로 그녀의 심리상태를 풀어내 보고자 한다. 소설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쓸쓸한 장혜자의 삶은 그저 오랜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타는, 남편마저 잃은 한 한국 여성이라는 말로 쉽게 표현되지 못한다. 장혜자는 직접 전쟁을 겪은 그 여파로 정신적 장애, 즉 전쟁 트라우마를 앓는 ‘장애자’의 대명사라고 한다.

1980년도에 정신의학계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개념이 정의되면서 전쟁 관련 트라우마도 함께 주목받았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세대 간의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에서 독일 나치에 의해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서양 국가로 이민을 간 가족에게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장혜자의 경우 남편을 따라 이민을 가는 자발성도 분명히 있었지만, 연구 속 가족들과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먼저 서양 국가 현지인에 대한 열등감이다. 맥은 처음 이민을 간 시드니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혜자가 안타까워 그녀의 고향과 비슷한 현재 살고 있는 스프링필드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배타성은 여전했고 마을 사람들도 그녀를 냉대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이방인이라는 신분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섞이길 바라는 갈망이 있는 동시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애국에 대한 마음도 더욱 커진다. 스프링필드 기차역을 더불어 지리적으로 본인의 고향과 닮아 있는 그곳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감아 고향을 그리는 것과 외국의 작은 동네에 방문한 요한 가족에게 귀한 각종 나물 요리를 내온 이유가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공통으로 보이는 패턴은 전쟁 세대 부모와 그들의 자녀 간의 복잡한 관계성이다. 연구 속의 자녀들은 전쟁을 겪은 부모에 대한 공감과 연민도 베풀지만, 오히려 그들을 비판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분리하려는 양가감정을 보였다. 이는 전쟁을 겪은 부모의 감정적 빚을 갚아주려는 시도와 동시에 그 부담이 다음 세대로 전이되면서 희생이 요구되고 이를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혜자의 아들은 영국으로, 딸은 시드니로 출가했고 안부만 묻는 사이로 남았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전쟁에 노출된 후 가족 안팎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할 때 전쟁 관련 트라우마와 PTSD 발병 확률을 높인다고 한다.

장혜자는 전쟁 중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남은 자식들 마저도 본인 삶을 찾아 떠났으며 이민 후 다정했던 남편도 잃었다. 이방인의 삶을 살던 그녀에게 한국인 요한 부부의 담임목사 청빙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며, 타국에서 먹는 나물 요리의 의미를 알아주는 그들이 가족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상처는 계속 남아있을 것인가
1980년도에 PTSD가 개념화되고 난 20년 후에 트라우마와 상처에 집중하기보단 그것을 깨고 나와 긍정적인 삶의 목표로 시선을 돌리자는 긍정심리학 관점의 정신건강 모델이 형성되었다.

한 연구에서는 긍정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인지적 행위(cognitive coping)와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hope)이 중요한 심리 요소로 간주한다. 특히 ‘희망(혹은 소망)’은 종교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미덕인데, 한스와 함께 편찮은 몸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참석하고 메노라에 불붙이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신앙적 모습을 볼 수 있다.

단단한 신앙을 뿌리로 둔 소망은 전쟁을 겪은 난민들에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가 예측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 된 요한을 만나면서 그녀에게도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고 목적이 생겼으며,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내면의 상처는 점점 아무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조강은 그런데도 흐른다
이 소설은 이승현 목사(필명 이해산)가 크리스천라이프 460호(2023년 7월 30일 발행)에 게재했다. 이 목사는 같은 호에 <복 읽는 사람>칼럼으로 “조강은 흐른다”를 썼다. 이 소설과 칼럼은 서로 연결된다고 본다. 조강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배가 다닐 수 없는 지역으로 민간 선박의 접근이 제한되었다.

오두산 전망대 안내원은 “저기는 사람이 다닐 수 없었던 곳”이라며 한강 하구를 설명한다. 분단으로 어선 한 척 다니지 못했던 곳이지만 그 강을 둘러싼 정치적, 지리적 이념과 관계없이 조강은 그런데도 흐른다. 어떤 전쟁을 경험했고 어떤 상처를 품었어도, 조강은 그런데도 흐른다. 이처럼 장혜자의 상처와 이야기는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로 흐르고, 또 흘러야만 한다.

단편소설 <발그림자> 중에서/_이해산 쓰고, 이예빈 그리다

요한은 장 할머니가 슬픔에 겨워 눈물을 삼키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조용히 곁으로 갔다. 인기척을 느낀 할머니는 살짝 웃으며 요한을 맞이했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먼데 벌써 일어났네.”
“아~예. 화장실에 가려다 불이 밝아 나와 보았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안 주무시고 뭐 하세요.”
“아~ 이것. 보면 모르나? 바느질하는 거야. 한번 봐.”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이거, 가만있어 봐. 뭐라고 하더라. 음, 밥상 위에 덮는 천인가요.”
“비슷하지. 그러나 이것은 조각보라고 해. 책 보따리도 되고 보자기도 되고. 여기서는 밤도 담고 잣도 담고는 했지만.”
“이렇게 작은 천을 모아 한 올 한 올 땀을 따서 이처럼 아름다운 보자기를 만든 거예요? 너무나 아름다워요. 놀랍군요.”
“칭찬해 주니 고맙네. 이건 내가 한국 떠날 때 가져온 거야. 꼭 필요한 곳에 쓰일 거로 생각하면서. 이걸 탐하는 사람은 많았는데 줄 만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거든.”

장 할머니는 붉은 실을 자르려고 가위를 집어 들었다. 무쇠 가위였다. 보기에도 무척 오래되어 보였다.

“할머니, 골동품인 가위를 아직 쓰시네요.”
“이 가위는 사연이 있어. 오빠가 전쟁 나기 전에 평양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다가 잠시 집에 왔었는데 시집가면 쓰라고 오빠가 쓰던 가위와 바늘 모음까지 주고 갔어. 여기 보면 ‘평양’이라고 쓰여 있을 거야.”

요한은 장 할머니 손에 든 가위를 불빛에 비춰 보았다. 가위가 서로 만나는 부분에 ‘평양’이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장 할머니가 이 가위를 수만 리 떨어진 이곳까지 가져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요한은 장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 가위 아내에게 주실래요.”
“그럼 주고 말고, 조각보도 윤지에게 줄 거야.”
“감사합니다. 할머니를 기억하면서 잘 보관할게요.”


“김 목사님을 보니 평양 간 오빠가 생각나.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이 낡은 골무와 닳고 짧아진 바늘도 늙어가는 나와 비슷해졌어. 저 시커먼 가위만 그대로야. 이상하지. 전에는 막연히 불안하고 죽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하고. 때때로 전쟁 꿈을 꾸고는 놀라서 깨곤 하지. 전에는 그럴 때마다 맥이 나를 꼭 안아주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멍하니 앉아 있곤 해. 한스가 맥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왠지 맥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그러지 못하고 있어. 맥 말이야. 작년에 심장병으로 갔어. 지금은 한스의 도움이 없으면 장도 못 봐. 나 혼자서 다 알아서 해야 하는데 말이야. 아직도 내가 읍내에 나가면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하지. 맥의 친구들의 아이들만 빼고.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소용없어. 어느 젊은 것은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 거야. 백 년을 산들 천 년을 산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인 것 같아, 나 죽으면 영혼이라도 고향에 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