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서서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년시절에 애독하였던 안톤 슈낙(독일,1892~1973)의 명 수필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처음 글이다.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문득 ‘여기 십오 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누워있음’ 에서는 우리들 가슴에 처절히 녹아있는 고독과 적막, 회한 등을 터치하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 클라라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샜는지 모른다. 낭만적 애상은 짙은 회한이 되어 회색의 멜랑꼴리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바이올린의 지현(G),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깃,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 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1953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1982년 교과서 개편 때까지 근 30여년간, 십대들을 시정 있는 가을로 이끌었던 명 수필이다.

지난 금요일(9월30일)에 잠시 잊고 있던 ㄷ 군(21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목사님,다름이 아니고 제가 지난주 금요일에 병원에서 치료(백혈병)가 불가능하다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많게는 4주정도 밖에 시간이 없다구요.
처음엔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생각에 평안하고 마음에 근심이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또 생명은 하나님께 달린 거란 걸 생각하니 용기를 얻어 제 건강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요. 기도 부탁 드려요.목사님,건강 다시 회복해서 밀알 다시 나가서 섬기고 싶네요. 저한테 정말 소중한 곳이었어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할 말을 잃고 메시지를 읽고 또 읽는다. 항암 치료를 두 번이나 하고 거의 치료가 되어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얼마 전인데……4주간의 시한부인생 선고라니 말도 안된다. 이건 아니지. 하나님, 이럴 수가 있어요. 안됩니다. 인생의 꽃인 20대를 활짝 꽃피울 나이인데…… 한참을 울며 불며 하나님께 항의기도를 하고 났더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된다.

지난 한주간, ㄷ 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난 한주간을 잠 못 이루는 밤에 별의 별 마음으로 자신을 다독여가던 그를 생각하며 분노와 절망의 마음들을 추스른다. ㄷ군은 칼리지 12학년때(17세)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만2년을 밀알장애인들을 섬겨 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시험 때면 밀토 결석이 당연하다. 그 바쁜 시험 기간 중에도, 교내 합창제 때에도 그의 섬김은 한결 같았다. 학업성적도 상위 탑 클라스에다가 리더십이 뛰어나다. 외유내강 형으로 가슴이 따뜻하고 신앙심이 깊은 학생이다.

주변의 친지들에게 긴급기도를 요청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10월의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이 햇살의 느낌을 오래도록 함께 누려야 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ㄷ군(21세)은 백혈병이 재발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에 담당의사로부터 지난 9월23일에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청년은 아마도 엄청난 사투를 했을 것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한 주간을 발버둥치던 차에 2012년부터 2년간 봉사했던 밀알장애인들을 생각하면서 남은 기간을 하나님께 맡기면서부터 평안을 찾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 종에게 금요일(9.30)에 연락을 해온 겁니다. ㄷ군이 넘넘 불쌍합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귀하지 않은 존재가 있으리오. ㄷ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의사가 판정한 ㄷ 군의 4주간의 시한부를 40년으로 연장시켜달라고 하나님께 합심기도를 부탁합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여러분의 애통하여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듣고 계십니다. 꺼져가는 생명이 아니라 덤으로라도 생명 주십시오. 그가 제2의 인생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받도록 하십시다. ㄷ 군을 살립시다. 몸부림치는 젊은 ㄷ 군에게 회생의 기도 불을 활활 태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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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