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을 이루시는 하나님

잠언 16:1, 3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To man belong the plans of the heart, but from the LORD comes the reply of the tongue. Commit to the LORD whatever you do, and your plans will succeed.

2019년, 전 세계의 영화계를 흔들고 K-Movie의 시대를 연 한국 영화가 있다. 바로 기생충(Parasite)이다. 이 영화는 비영어권 영화로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며 새역사를 쓴 작품이다. 그 안에는 유쾌하면서도 묵직하며 가벼우면서도 의미 있는 대사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주인공 기택이 아들 기우에게 한 대사다.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그의 말 대로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철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는 이를 좀 더 학문적으로 풀어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삶의 우발성과 우연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계획”의 삶을 소개했다. 과연 영화의 대사와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처럼 아무 계획 없이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

계획을 세우는 행위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 이는 단순히 미래에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운 점들을 토대로 현재 나의 모습을 파악하여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진 동물은 없다.


그러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참 고귀하고 신비한 일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는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은 모조리 무시하시고 강압적으로 자신의 뜻만 이루시는 분이 아니다. 인간의 계획을 살피시고, 개입하시고, 수정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마음에 계획한 것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을 배운다. 먼저는 1절 말씀처럼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의 계획이 제아무리 철저하고 완벽하다 할지라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행사를 그분께 맡기게 만든다. 이 절대 의존의 신앙은 우리의 경영을 이루시는 것으로 열매 맺는다. 즉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실 뿐 아니라 우리가 경영하는 것, 곧 계획하는 것을 이루어 주심으로 기쁨을 더하신다.

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시점, 올해를 시작하며 세운 계획을 돌아보고 내년의 계획을 그려보기를 원한다. 그 계획을 주께 아뢰고 행사를 맡기며 전진해 보라.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시편 16: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will not be shaken.

자녀들과 함께 새로운 장소에 가면, 평소에 활동적인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발견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만날 때는 부모의 다리를 방패 삼아 뒤로 숨기 마련이다. 한두 번이라도 가본 곳이면 부모의 손을 마다하고 뛰놀 정도로 활동적인 아이들이지만 위험이 감지된 곳에서는 부모의 뒤에 서서 손을 꼭 잡는다.

오늘 시편 기자의 모습이 마치 그런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본 시편은 다윗의 믹담이다. 믹담은 비난이나 구원의 시를 칭하는 용어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주의 구원을 바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시작부터 자신을 지켜달라 호소하고 있다.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정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극도로 위험한 상황임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다윗의 인생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부터 늘 위험으로 가득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생소한 곳에 살아야 했다. 그는 많은 이들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됐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 맴돌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항상 주님을 앞에 모십니다.”

다윗은 코람데오(Coramdeo)의 인생을 살았다. 이 라틴어처럼, 늘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는 또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주님이 앞에 계시고 나는 주님 뒤에 있겠습니다.” 곧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순종하며 따르겠다는 의미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리더(Leader)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주 접한다. 그로 인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도 하고, 리더가 되지 못할 때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리더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목표와 의지는 매우 훌륭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이가 리더가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리더가 아니다.


하나님은 팔로워(Follower)를 찾으신다. 주님을 항상 앞에 모시고, 그를 뒤따라가는 사람 말이다. 리더의 자리에 섰을 때도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팔로워를 기뻐하신다.

당신이 선두에 서 있다면 홀로 너무나 많은 것을 막아내야 하고 수많은 이들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책임감은 무거운 짐으로 당신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하지만, 주님 뒤에 숨는다면 주께서 여러분의 방패, 요새,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시며 더 많은 이들을 이끌 수 있는 엔진이 되어 주신다. 주님의 강하고 의로운 팔이 요동하는 인생을 붙잡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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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경헌
레이로드 칼리지 졸업. 장신대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왕가누이 한인교회 담임. 분주한 일상 중 잠시 시간을 구별해 잠언과 시편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다 보면 우리 안에 영적인 지성과 지적인 영성이 형성될 줄 믿는다. 주의 말씀으로 풍성한 복이 되기를 소망하며 연재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