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orthodoxy)과 이단(heresy)

정통(orthodoxy)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의미는 승자와 패자의 서술 사이에서 승자의 삶을 찬양하고 패자의 잘못을 드러내어 질책하는 역사적 서술이 많으니, 확률적으로는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에 따르면 기독교 신학에 있어 정통 교리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부에 있는 중심적 신비들을 보존”하는 것이며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안에서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와 활동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근본적인 경험을 보호하고 감싸려 망을 치려는 시도”라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 아래 성경 기록 시기인 1세기에서부터 드러난 이단의 기원과 성경의 정경화(canonization) 과정에서 그들과의 논쟁을 통해 확립된 정통에 대한 역사적인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바른 인식과 믿음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신조로 표현되어진 것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과 같은 진술입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졌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다수를 이루던 유대인들은 율법의 전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서 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기초한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성경에 기반을 둔 교리를 정립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바로 사도들로, 기독교 교리의 원천인 예수님에 관한 지식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의 전승을 이어가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정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와 함께 교리의 권위는 사도의 권위와 동일하게 간주되기도 하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과정에서 진리는 어느 한 사도에게 비밀리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도 전체에게 공개적으로 주어졌음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신조와 신경을 작성하여 복음을 왜곡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이단들에 대응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형태의 사도신경은 6세기경에 확정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중심 뼈대는 그보다 훨씬 전에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4세기에 로마 교회에서는 ‘Roman Symbol’로 알려진 ‘신조’을 사용하였는데 두세 구절을 제외한 전체가 이미 2세기의 이레니우스(Irenaeus)의 글들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담은 신경은 처음에는 ‘믿는다(creed)’라는 단어 대신 ‘symbol’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암호를 뜻하는 단어로,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기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단교회 인지 혹은 정통교회 인가를 구분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신경을 군대의 암호처럼 암송할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정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단 혹은 정통이라는 단어 대신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아닌 것을 “다른 복음”(갈 1:6) 또는 “다른 교훈”(딤전 1:3, 6:3)이라 칭하며 그 거짓 교훈에 빠지는 이들에 대한 경고를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등과 같이 강조합니다.


이단(heresy)
이단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하이레시스’에서 유래되었고 문자적 의미에는 ‘몇 개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함’이라는 ‘선택’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즉, 어떠한 견해에 있어서 임의적인 해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초기에 ‘하이레시스’는 어떤 특정한 학파나 그룹에 속한 이들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한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의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일컬어 유대인들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행 24:5)로 지칭하면서 그들의 눈에 바울을 유대교의 작은 분파 가운데 하나인 나사렛 당의 지도자 정도로 여겼을 때 이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복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사도들의 전통적 가르침에서 벗어난 다양한 철학적인 접근들, 그리고 왜곡된 율법주의적 구원관들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과 이해로부터 교회와 성도를 지킬 의무가 생겨납니다. 따라서 교회의 단일성을 지키고 복음과 정통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 왜곡된 다른 복음과 다른 교훈을 따르는 무리를 배제하고 정죄하기 위해 정통교회에 반대되는 세력을 통칭하는 단어로 ‘이단’이라는 용어로 규정짓게 됩니다.

바울에 의하면 이단은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왜곡하며 복음을 변질시키며 사도들의 지위를 흔드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복음이 초대교회가 직면한 이단들의 실체였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시기부터 교회 내부와 외부에서 헬라 철학과 혼합된 영지주의적 가르침이나 혹은 지나친 유대주의(율법주의)를 주장하면서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이 쓴 서신 베드로후서 2장 1절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의 속삭임에 대해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왜곡되고 거짓된 어떤 교훈이나 행실이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그들은 강한 어조로 이를 비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세기에서부터 등장한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한쪽은 유대 전통만을 강조하는 에비온파로 율법으로 복음이 주는 자유와 칭의를 제한하려 한 시도였고, 또 다른 진영은 니골라당과 마르시온으로 모든 유대 전통 및 그들이 지켜왔던 율법을 철저히 부정하는 시도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지주의의 영향 아래 자기들에게만 전해진 비밀계시를 주장하며, 마르시온 주의는 바울만을 고집하고,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성령의 직접 계시만을 강조하며 믿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기존 교리를 수정하고 훼손하며 그들만의 교리와 성경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정통교회에서의 진리는 그런 식으로 어느 한 사도에게 혹은 한 무리에게 비밀리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그리고 사도들이 세운 교회 공동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전해졌다고 선언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율법주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으로 율법의 문자적 해석과 적용, 혹은 영지주의적 칭의와 구원으로 연결하려 합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 복음과의 연결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율법주의 논란은 성경의 정경화와 신·구약의 연계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기독교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에 가장 심각한 위기는 요한일서 2장 22절에서 말하는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는” 그리스도론의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인 그리스도가 주님이 되심을 부정하는 이러한 거짓 교훈을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이들을 성경에서는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삼위일체론과 직결된 교리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논쟁은 3∼4세기에 이르러서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낮은 위치인지, 혹은 같은 신성이지만 종속되는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쟁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여러 번의 공의회를 통해 ‘니케아 신조’(325)와 ‘콘스탄티노플 신조’(381)가 만들어졌는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핵심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동일한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성령님을 동일한 신성으로 고백하며 기독교 역사에서 삼위일체론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이후 긴 중세를 거치는 동안 교회나 공의회에서 다양한 교파의 성경해석과 시대적 정황 속에서 새로운 해석들은 제시되었지만 삼위일체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개신교,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를 망라한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성경적 교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경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는 복음을 비롯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전통과 문화와 관습, 그리고 사회적 이념과 논리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련을 맺게 되고 자의적 타의적으로 신앙의 신비를 무너뜨리고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자신들 마음대로 성경을 확정한 마르시온에 대응하기 위해 정경화 작업을 서두르게 되었고 90년경 얌니아회의에서 구약성경 39권,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을 기독교 정경으로 확정합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마 24:23-27)해서 복음에서 떠나게 만들며,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소개(고후 11:4)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전통적 유대주의적인 규율(갈 1:6-9)과 헬라의 철학과 학문(요일 4:1-6)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사도적 전통에 따른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성경의 정경화 작업과 교리를 재확인하는 신조 등을 정립하며 기독교인의 삶과 가르침의 중심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확히 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출처: 김용규,『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IVP 출판사, 2021)을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통해 책에서 다뤄지는 기독교 신학의 내용을 필자의 관점에서 재 인용과 재 해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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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봉조
총신대 신대원 졸업. 세계선교교회 담임. “언어는 존재의 힘이다”는 통찰을 빌려 신학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의 언어로 하나님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하나님 사랑에 대한 삶의 귀중한 자리를 확인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