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꾼을 찾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나에게도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미래에 대한 많은 계획과 꿈이 있었다. 교육 선교도 확장하여 새로운 학교를 하나 더 설립하려고 했다. 그리고 크리스천 캠프장도 최고 수준의 캠프장으로 향상시키려고 많은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쇼핑몰도 여러 세입자들의 요청에 따라 크게 확장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후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그동안 정신없이 사역 확장에 마음을 쏟고 달려가다가 잠시 멈추고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질랜드 땅에서 지난 30여 년간 정신없이 달려왔다. 뒤돌아보니 내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온 전쟁터 같았다. 세월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잠시 나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벌써 60대 중반을 넘어 70을 바라보고 있다. 


사회 같으면 벌써 퇴직을 해야 할 나이다. 그런데 너무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나이를 잊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잔뜩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앞으로 갈 길을 돌아보게 하는 너무나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할 시간을 얼마나 주실지 모르지만 마냥 확장만 할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나누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 왔음을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 많은 것들을 그냥 두고 갈 생각을 하니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나누는 사역을 좀 더 확장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코로나 시대라 선교 현장을 방문할 수 없고, 외부적인 사역을 직접적으로 확장해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주셨다. 최근 통계를 보면 코로나로 인해 양식이 없어 굶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 


그들에게 직접 양식을 나눌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기아지역에서 섬기는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이 일을 하도록 지혜를 주셨다. 먼저 함께 일할 선교사님들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앞으로 장기적인 양식 나눔 프로젝트를 하려면 우리의 목적에 맞게 동역해 줄 진실된 선교사님들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이곳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사와 함께 ‘선한 일꾼을 찾습니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하여 여러 지역의 선교사님들을 추천 받았다. 그리고 우리 카톡 단체방을 통해서도 일꾼들을 찾았다. 

감사하게도 여러 기아지역에서 섬기시는 선교사님들과 연결이 되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과 미얀마, 네팔, 인도, 태국, 필리핀 등 전 세계 30여 개국의 기아지역과 난민수용소 등에 정기적으로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자들에게 양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늘 불쌍한 자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늘 배고픈 자들에게 있으시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신 24:19)

수원 나눔센터
과거 대한민국은 6·25 전쟁으로 인해 우리 생활의 터전과 사회·경제 체제의 기반이 모두 파괴되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살았다. 그나마 미국이 원조해준 식량과 현물로 간신히 버티어 나갔다. 


국가 기록원에 따르면, 남한 제조업은 1949년 대비 42퍼센트가 파괴되었고, 북한은 1949년 대비 공업의 6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모든 외신들도 한국을 회복이 불가능한, 소망이 없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아직도 어릴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에서 원조한 밀가루 한 포대를 배급받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종일 동사무소에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곤 했다. 어렵게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오면 집안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배고픔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체험을 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애틋함이 늘 있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언젠가는 반드시 어려운 이웃들에게 갚아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한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매년 2~3차례 한국에 집회를 나갔다. 방송, 신문을 통하여, 그리고 대학 채플과 전국 어디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할 수 있는 곳이면 기쁨으로 다녔다. 


그런데 한국 집회를 갈 때마다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길거리에 많은 노인들이 리어카에 산더미 같은 폐지를 싣고 위험한 도로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다 팔아도 돈 만 원 벌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식사를 거르는 노인들이 많다는 소식도 접하였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차를 몰고 가다가도 내려서 5만 원씩을 쥐어 주곤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굶주린 노인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먹일 수 있을까 늘 마음에 품고 오랜 시간 고민하며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내가 뉴질랜드에 거주하다 보니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 간절함을 보시고 지난 2018년에 이 사역의 길을 열어 주셨다. 수원에 7층짜리 빌딩을 주셔서 나눔센터를 열게 하셨다. 


가장 먼저 어려운 노인들을 위하여 무료 급식을 실시했다. 매일 많은 노인분들이 몰려오셨다. 정성을 다하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렸다. 그리고 그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그분들이 주인이 되는 교회도 세웠다. 지금도 매 주일 노인분들이 기쁘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코로나로 모일 수 없게 된 후로 무료 급식은 잠정 중단이 되고, 대신 일주일 먹을 식량을 준비해서 드렸다. 라면, 쌀, 김밥, 빵, 두유, 건빵을 넣어서 푸짐하게 나눠 드렸다. 소문을 듣고 먼 지역에서도 찾아오셨다. 식량을 나눠 주는 날에는 무려 500명 이상이 끝없이 줄을 서신다.


그리고 요즈음 새롭게 시작한 사역이 하나 있다. 수원역에 있는 노숙자 150여 명을 돌보는 일이다. 매주 2회 방문하여 그분들의 필요를 채워 준다. 음식뿐 아니라 옷과 생활용품, 의약품 등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미리 파악해서 다 공급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상처로 파괴된 그분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역에는 뉴질랜드에서 훈련받고 돌아온 우리 MEC(선교·영어 장학생) 형제자매들의 헌신이 크다. 몸으로 와서 섬길 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들을 풍성히 공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선한 마음만 가져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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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태
뉴질랜드 Assembly of God Bible College 졸업. 오클랜드 인터내셔날처치 담임목사. AEC 및 다니엘캠프장 이사장. 저서로는 ‘이른 비의 기적’과 ‘늦은 비의 기적’을 통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물질의 법칙’을 알려 주는 재물이야기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