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는 떡 하나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마가복음 8장 14-21절

김광도 목사<크라이스트처치한사랑교회>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이 두 사건을 배경으로 놓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는 기억의 방이고 하나는 망각의 방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의 방에 집어넣고 또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망각의 방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들을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일들은 망각하기도 한다.”

흔히,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은 평생 기억에 가져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일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또는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8장 1-10절에는 칠병이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건너편 데가볼리 지역에서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로 7 바구니를 남긴 기적입니다. 오병이어 사건과 매우 비슷한 기적이 또다시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오병이어와 비슷한 칠병이어의 사건을 또 베푸셨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왕으로 오셨는데, 유대인만 위한 왕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생명의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입장에서 보면 비슷한 사건을 두 번이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간파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전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기적을 보았음에도 그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제자들이 예수님과 전도여행이 또 시작되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상황을 기록하며 한 개는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가의 해학적인 표현이 드러납니다.

마가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마가가 12사도가 아니었음에도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받아 복음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마가복음의 기록은 베드로의 기억과 예수님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된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떡이 한 개 밖에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보면 제자들은 떡을 안 가져왔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떡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없다는 소리입니까? 그 당시에는 떡이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는 그 배에 떡이 한 개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배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인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이 배에 있는 떡은 물리적인 떡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네~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떡이 한 개밖에 없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한 그 배에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을 가까이서 목격했음에도 이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리적인 떡이 없음을 인하여 굉장히 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단 제자들만 그런가요? 믿는다 하는 우리들도 그럴 때가 많지 않나요? 예수님은 현실의 문제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17절)”

왜 믿음이 연약해졌습니까? 마음이 둔하여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오늘 제자들이 마음이 둔하여진 것,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앞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이시고 베푸신 이적을 잊어버렸습니다.

잠언 4장 23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 2가지를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십니다(15절). 왜 갑자기 누룩을 이야기하실까요?

누룩은 발효시켜 빨리 퍼지게 만드는 효모인데요, 성경에서는 누룩을 다양하게 인용합니다. 좋은 영향력의 상징으로 쓰여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쁜, 죄의 영향력의 확산을 의미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형식주의 신앙을 뜻하고, 헤롯의 누룩은 물질주의입니다.

적은 누룩으로 빵을 부풀게 만드는 것처럼, 여러분 작은 죄가 우리를 타락의 길로 인도합니다.

주님의 부름을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들께 권합니다. 계속해서 인생의 진짜 떡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살다 보면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과 염려가 올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떡이 없다고 고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 인생에 필요한 진짜 떡은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주님이 떡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미 함께하심에도 그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고,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의 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떡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