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신 겸손한 왕

제6장 꿈꾸는 나귀, 발람, 어린양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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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였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이다. 매년 유월절이 되면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순례객이 되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나귀를 끌고간 두 사람은 곧장 어떤 청년에게로 나아갔다. 그 청년은 다름아닌 예수였다. 곁에 있던 제자들이 나귀를 보자 겉옷을 벗어 나귀 등에 깔았다.

예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 나귀에 올라탔다. 발람은 아직 한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었지만, 예수를 위해 등을 내어줄 때 이상하게도 매우 평안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제자들은 혹시라도 새끼 나귀가 겁먹을까봐 아빠 나귀를 그 뒤에 함께 뒤따르게 했다.

드디어 예수의 일행이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길은 순례객을 환영하는 인파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은 예수 일행을 보자 눈에 띄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를 이미 잘 알고있는 듯했다. 마치 예수, 그만을 기다리며 몰려든 인파로 느껴질 정도였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질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사람들은 서둘러 자기 겉옷을, 또 들에서 벤 종려나무 가지를 길 위에 깔았다. 군중은 삽시간에 흥분에 휩싸였다. 새끼 나귀 발람은 가슴이 벅찼다. 마음에 새기고 새겨왔던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 드디어 성취되는 순간인가?

“시온 백성아, 기뻐하여라. 예루살렘 백성아, 즐거이 외쳐라. 보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구원하시는 왕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신다.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발람도 덩달아 히호하며 우쭐거렸다. 예루살렘 성은 예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외침으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온 성에 울려퍼지던 군중의 함성이 일순간에 뚝 끊어졌다. 예루살렘 성은 안팎으로 쥐죽은 듯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때였다. 어디선가 “두두두” 하며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나귀 발람이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성밖의 길 저편에서부터 일대의 군마가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로마 총독 빌라도!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투구를 쓰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앞장서 달리는 수십기의 흑마들이 콧김을 세차게 내뿜으며 쭉쭉 뻗은 다리를 힘차게 내딛고 있었다. 그 뒤로 빌라도 총독이 모는 화려한 문양의 전차가 네 마리의 백마를 앞세우고 거침없이 돌아가는 바퀴를 뽐내며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휙, 휙!”

채찍을 말 등짝에 휘갈기며 길을 재촉하는 빌라도. 그 뒤로는 다시 빌라도를 후방에서 호위하며 뒤따르는 수십기의 흑마들…….
천천히 길을 걷던 순례객들은 황망한 발걸음으로 길가로 물러섰다.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 가까이에 이르자 성벽 위에 늘어서있던 로마 병사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며 예를 갖췄다.
“빰빠빠~”

나귀 발람은 군중 틈에서 촛점잃은 눈으로 로마 총독 빌라도의 행차를 망연자실 지켜보았다. 멋진 갈기, 쭉쭉 뻗은 다리의 말들을 쳐다보면서 볼품없는 자신의 꼬락서니를 되돌아보았다. 작은 키, 못생긴 얼굴, 어울리지 않게 크기만 한 귀……

‘내가 과연 왕을 모실 자격이 되나?’

발람은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발람의 등에선 예수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아직도 내 등에 계시는 것일까?’
발람은 차마 예수를 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고 있던 발람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일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발람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그는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빌라도같은 권력자야 날 타지 않겠지. 그는 나같은 놈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거야. 그러나, 그래도 난 상관없어. 후훗. 나를 타셨던 그분이 진짜 왕임을 내가 아니까. 볼품없는 나귀도 기꺼이 타주시는 겸손한 왕. 내 왕은 낮은 데로 임하시는…..‘그리스도’이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