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김원일 목사<해밀턴순복음교회>

성령 충만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는 우리 시대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 지진, 질병이 증가하고 있으며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식어 가고 있으며 불법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세상은 분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절).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침례받을 것을 분부하셨습니다(행 1:4-5). 성령 충만은 마지막 때 승리하는 삶을 위해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신약성경에서 ‘충만하다’는 헬라어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나 한국어는 이 두 개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 개념을 성령 충만의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충만하다’의 핌플레미(πίμπλημι)는 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과 관련되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8회 사용되며(눅 1:15, 1:41, 1:67, 행 2:4, 4:8, 4:31, 9:17, 13:9) 이는 순간적인 체험으로 구체적인 과업을 위한 사건들에 역사했던 성령의 충만함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보통 순간적으로 짧게 충만해지는 것으로 사역을 위한 능력’은 영구적이지 않고, 일시적이며 그 뒤에 역동적인 행동을 준비시키거나 즉각적인 행동이 따르는 특징을 보입니다. 외적인 성령 충만의 결과는 성령의 은사(고전 12장)로 나타납니다. 사역을 잘할 수 있는 기능적인 특성으로,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충만함’의 플레로오(πληρόω)로 ‘무엇이 가득 차 있는 상태’, ‘가득 참’, ‘완전함’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성령과 관련하여 신약성경에 7회 사용되며(눅 4:1, 행 6:3, 6:5, 7:55, 11:24, 11:52, 엡 5:18), 충만한 존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속적이며 느리지만, 점진적인 영적 성숙을 위한 성령의 내적인 역사를 가리킬 때 일관되게 사용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성령의 모든 내적인 역사의 결과로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열매로(갈 5:22-23) 성숙됩니다.

위와 같이 성령 충만은 외적인 성령의 은사와 내적인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외적 충만과 내적인 충만의 균형이 지속적으로 충만할 때 이를 성령 충만이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첫째는 성령 충만한 삶이란 곧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성품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롬 6:11, 갈2:20) 같이 예수님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나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은 주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롬 14:8). 나의 의지는 주의 의지의 지배를 받고, 나의 전 인격과 재능은 남김없이 주의 것이 되는 삶입니다.

둘째는 거룩한 비전을 품고 말하는 삶입니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알게 하고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소명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의 능력을 깨닫게 하십니다(엡 1장 17-19). 즉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 28절). 어린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비전을 품게 됩니다. 믿음과 소망이 넘치는 언어를 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어제의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소망의 내일을 꿈꾸며 선포하게 됩니다.

셋째는 매일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듯,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5:13).

지금 여기에서 성령 충만은 지식이 아닌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성령 충만한 경험이 오늘의 성령 충만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이 100도에서 끓고 불을 끄고 얼마 후에는 물이 식듯, 신앙의 열심의 불이 꺼지면 내 안에 예수님으로 충만하지 않고 세상과 자아로 다시 가득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하며 날마다 십자가로 충만해짐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예배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약속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십시오(벧전 4:11).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타고난 재능과는 다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겸손하게 성령님의 뜻을 받들어 주의 몸 된 교회의 유익과 복음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받은 은사의 사용은 선택적 개념이 아닌 의무요 필수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골 1:24) 사역을 감당할 때 자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사명 감당을 위해 주시는 성령을 날마다 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오늘 뉴질랜드에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구하며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에서, 한국 정서와 뉴질랜드 문화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성령 충만입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처음이라 예측 불가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능력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응전할 능력과 용기가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비록 말과 정서는 잘 안 통하는 세대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로 예수님이 증거되어집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성령 충만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주님의 넘치는 위로와 은혜가 섬기시는 모든 교회와 가정 위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