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속 이민자의 이야기: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이민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보편성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민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특수성은 이민의 보편적 역사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이민과 선교를 연결하는 강점이 되는 지점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특수성이 선교의 보편성과 충돌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민학 안에서 이스라엘의 특수성은 이민자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이야기들로 바뀌기 때문이다.

즉, 이민자들에게는 성경 속 보편적인 역사를 통해 선교를 설명하는 것보다 특수한 역사인 이스라엘을 통한 이민자들을 향한 선교가 더 타당한 근거가 된다.

이스라엘의 특수성이 이민 선교의 강점이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특수성에만 집중하면 인류는 특별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보편적 집단으로 나뉘게 된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의 특수성이 이방인들을 향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특수한 이스라엘과 특별하지 않은 이스라엘 외의 집단으로 구분하지 않고, ‘이민’을 기준으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이민을 떠난 사람들과 이민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즉, 이민을 떠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닌, 이민을 떠난 모든 사람의 역사가 된다. 결국, 이민을 떠난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특수성 속 하나님을 이민자들의 보편적 하나님으로 확장시킨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편적 이민과 연결이 되는가?

첫째,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의 역사이다
출애굽의 역사란, 자신들이 살아가던 땅인 이집트로부터 새로운 땅인 가나안으로 가는 이야기이다. 이집트는 자신들의 삶을 억누르고 있는 사회적인 억압들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


한국인들의 이민의 역사 속에서 출애굽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민 선교의 이야기가 된 좋은 예가 있다. 그것은 만주 땅으로 떠나간 규암 김약연 목사의 삶이다.
김약연 목사는 일제의 억압과 압제, 그리고 반복되는 조선 북부의 기근을 피해서 만주 지역으로 가깝게 지내던 가정들과 집단 이주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한 땅을 명동촌이라 불렀다.


다음은 명동촌을 설명하는 글이다. “명동촌의 종교, 기독교는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에 머무는 개인적 종교가 아니라 노예의 처지에 신음하는 당시의 민족 전체를 살리는 출애굽의 종교였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출애굽의 역사는 자신들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 환경, 경제, 정치적인 상황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던 조선의 난민들에게 희망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양한 난민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둘째, 이스라엘의 광야는 이민자 자녀들의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광야에서 40년간 유랑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도대체 이민자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광야 40년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정착지를 향해 가는 40년의 여정으로 바꿀 수 있다. 즉, 40년은 정착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에 민수기에 나오는 두 번의 인구조사를 보면 세대간 교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애굽을 통해 이민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이민 정착지인 가나안 땅을 향하고, 그 여정 속에서 자녀들이 태어나서 자라게 된다. 그렇기에 40년 광야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20살 미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라나는 이야기이다. 광야에서 태어나고, 광야에서 자라나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야기이다.


이민의 과정 속에서 자라고 태어난 아이들은 이민학에서 이민 1.5세대, 2세대들로 표현한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부모의 결정을 따라 이민길에 오른 아이들은 1.5세대이다. 부모가 떠난 이민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2세대들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인 민수기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광야 40년은 이민 자녀들의 보편적 이야기로 전환된다.

셋째,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출애굽의 역사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나라를 잃고 강제로 바벨론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것은 강제 이주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변한다. 우리나라의 이야기 속에서 바벨론 이야기는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을 한 조상들의 이야기이며, 성착취를 당한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현대에서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 이민 브로커에 의한 반강제적인 이주와 그로 인한 착취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넷째,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의 특수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해방으로 통한 돌아온 이야기로 연결이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특수성은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역이민의 보편성으로 변하게 된다.


이민학에 있어서 간과하기 쉬운 부류가 역이민자들이다. 고향 땅을 떠나 새롭게 이주했던 삶에서, 다시금 어떤 상황이 되었든지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된 사람들이다. 유학생, 노동자, 국제결혼, 노후 등의 여러 역이민의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 땅은 과거에 떠날 때의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기 후에 돌아왔을 때에 자신들의 삶의 울타리인 성벽을 재건함에 있어서, 정착해 있던 사람들과 갈등이 생긴다. 이 특수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고향 땅에 들어와 또다른 문화 충격을 받고, 기존의 가치관과 충돌이 일어나는 역이민자들의 보편적 이야기가 된다.

이민자의 눈으로 선교를 바라볼 때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특수성은 보편성으로 변화된다. 구약성서를 읽을 때 이러한 관점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이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이주를 떠난 자들”을 향한 선교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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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균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 신대원, 일반대학원 졸업(한국교회사 전공). 오타고대학교 박사(선교학, 이민자 신학, 종교사회학 전공). 파머스톤노스 한마음교회 담임. 알파크루시스 강사. 현지교회와 이민자를 연결하는 꿈을 가지고, 선교와 이민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한다. 관심분야는 선교학, 이민자 신학, 한국교회사와 아시아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