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밭 5만 평

인도에 전도용 지프(JEEP) 10대를 지원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도용 지프를 보낼 때에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인도 교회에서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도에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지난번 후원해 준 지프 덕분에 복음의 큰 열매를 맺고 있다는 감사의 편지였다. 물론 이 메일은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이곳 뉴질랜드 교회 앞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감사의 글 아래에 장문의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가 보내준 지프로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고 더 많은 복음 전파를 위해 각 마을마다 목회자를 파송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200여 명의의 목회자를 파송했는데, 각 마을로 파송된 목회자들이 생활고로 3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생업을 위해 사역을 포기하고 도회지로 나간다고 했다. 이런 큰 어려움에 빠져 있으니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열렸는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 길이란 교회 옆에 약 5만 평의 사탕수수밭이 매물로 나왔는데 이것만 구입할 수 있다면 200명 목회자 생활비뿐 아니라 고아원과 양로원, 유치원까지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메일을 보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어렵게 지프 10대를 보냈는지 교회도 알고 있을 텐데, 교회에서 이 메일을 받았으면 그 요청대로 기도해 주면 될 것을 나에게 다시 보냈다는 사실에 인도교회 교인들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메일을 닫아 버리고 무시하려고 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 뉴질랜드 한 곳에 땅을 계약하게 하셔서 돈도 없이 무작정 계약을 하고 대책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한국에 한 기독교방송과 연결되어 갑자기 수백 명의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면서 통장에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땅값을 치르도록 돈을 주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땅값을 치르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그런 상황에 인도 선교사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 통장에 돈 있잖아.”


인도에서 온 메일을 무시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 강하게 들려왔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인도의 사탕수수밭이 얼마나 하겠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교회에 연락을 해서 그 사탕수수밭 가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얼마 뒤 연락이 왔는데 충격적이었다. 15만 달러라는 것이었다. 98년도에 이 돈이면 뉴질랜드에서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정도의 돈이 통장에 있었다. 잠시 생각했다. 이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은행에 찾아가서 15만 달러 수표를 끊었다. 그리고 수표를 담임목사님에게 드리며 절대로 무명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다음 주일날 목사님은 강단에서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그리고 15만 달러 수표를 흔들어 보였다. 다행히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 후로 담임목사님께 모든 여행 경비를 지원할 테니 직접 가서 확인하고 구매해 주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 사탕수수밭으로 인도 교회는 더욱 부흥 성장했다. 나중에 인도 교회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몇 차례 간곡하게 초청했다. 그러나 끝내 가지 않았다.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3개월치 생활비
90년대 초에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 문을 연 후로 한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그와 더불어 영어 연수와 현지 학교 입학을 위해서 초·중·고 학생들도 대거 들어왔다. 


외국에서 공부하면 영어도 빨리 배우고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으나 부모의 간섭이 없다 보니 탈선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별히 사춘기인 10대들은 자칫 인생을 망치기도 했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 안에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는 영어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영어학교 오너와 의논해서 탈선할 환경이 적은 로토루아라는 조그만 도시에 학교를 오픈했다.

첫해에 한국에서 약 40여 명의 중고생이 들어왔다. 이들 중 3분의 1은 품성이 좋은 아이들이고, 3분의 1은 부모가 이혼한 가정 아이들이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학교에서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들이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문제가 많았다. 매일 술, 담배는 기본이고, 마을 아이들과 패싸움을 하여 경찰이 하루가 멀다고 출동하고, 심지어 구치소에 갇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묵고 있는 홈스테이 집에서는 밤마다 전화가 와서 이 괴물들을 당장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며 해결해야 할 부모들이 오히려 이곳에서 아이를 망쳐 놓았다며 밤낮없이 전화로 따지고 들었다. 심지어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부모도 있었다. 

내 힘으로 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3일간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다. 원래 이 영어 연수 프로그램은 6개월간 영어 교육을 시킨 후에 현지 학교에 입학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큰 꿈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 입에는 이 기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발 학교 일 그만 하게 해주세요.”

놀랍게도 내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 6개월 과정이 끝날 무렵 IMF가 터졌다. 더 이상 한국에서 학생이 오지 않았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학교 문을 닫게 되니 학교 일을 통하여 재정적인 도움을 주려했던 신학대학에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된 게 제일 안타까웠다.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곧바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신학대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없었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로토루아에서 학교를 시작할 때에 거처할 조그만 집을 은행에서 80퍼센트 융자를 얻어 마련했다. 그런데 IMF로 인해 뉴질랜드 경제도 치명타를 입었고 빈들이 즐비했다. 집을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3주 안에 팔릴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기도의 응답대로 3주 만에 기적처럼 집이 팔렸다. 은행 빚을 갚고 나니 얼마 남지 않았으나 3개월치 생활비를 빼고 나머지 돈을 신학대학과 어려운 선교사 한 분에게 보내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는 했으나 얼마라도 신학대학을 지원하고 나니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잠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