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3:1~15)

이한성 목사<주의몸교회>

사람은 자기의 삶에 마지막 때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을 하거나 말을 하여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행동이나 말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되고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마지막 날 밤에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며 빵을 떼어 주시고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물을 가져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일들을 통해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삶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자신이 떠나간 후에 남게 될 제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후로 교회들은 이날의 만찬을 중요하게 기념하며 만찬을 예배의 거룩한 예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발을 씻기셨던 일은 덜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자주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만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발을 씻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진정한 관계를 위한 것이다”(8)
예수님께서 자기의 발을 씻기시는 것을 말리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8)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며 함께 먹고 자고 지냈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잘 알고 있고 가깝다고 자부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좋은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생각하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래서 가깝기는 하지만 선생님인 예수님이 제자인 자기의 발을 씻기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와 같이 3년 반 동안 함께 지내고 내 뒤를 열심히 따라다녔어도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관계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진정한 관계는 단지 좋은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가르침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누는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발을 씻기는 일을 통해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은 새로운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르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나누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나는 주(Lord)이지만 너희를 다스리고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을 씻기는 행위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을 씻겨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씻김을 받는 제자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초점이 있습니다.

발은 우리의 몸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땅과 닿아 있는 곳입니다. 당시에 포장되지도 않은 먼지 나는 길을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니던 사람들에게 가장 빨리 더러워지고 냄새도 많이 나는 곳 발입니다. 또 발은 우리 몸의 무게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발은 하루 종일 서거나 걸으면서 빨리 힘이 빠지고 지치고 피곤해지는 곳입니다. 몸에서 가장 많이 희생하면서도 가장 관심 받지 못하고 만지기 싫어하는 곳이 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믿음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발에 세상의 더러운 흙과 먼지가 묻고 냄새가 납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보다는 죄로 얼룩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원받은 기쁨과 열정은 사라지고 삶의 무게와 현실에 짓눌려 지치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이해해 주거나 용납해 주거나 위로해 주는 곳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더럽고 지친 발로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기 위해 다가갈 때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발에 얼굴을 찡그리고 냄새나는 발에 코를 막거나 외면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더러움을 탓하기도 합니다. 먼저 가서 발을 씻고 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더러운 발을 대하는 태도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발을 만지고 씻는다는 것은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냄새가 나고 더러운 것이 있을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용납의 행위입니다. 지치고 낙심하는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행위입니다. 당신의 어떤 허물과 더러움도 내가 만질 수 있고 그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친밀한 마음과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순간에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낙심하여 믿음의 길을 벗어나 자기의 삶을 찾아갈 것을 아셨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이해하시고 용납하시고 위로하시기를 이미 결정하셨고 그 마음을 발을 씻기시는 것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라”(14절)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에는 이 일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받고 아는 제자들과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약한 존재들입니다. 더러운 것들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더러워짐과 무기력함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반드시 찾아오게 됩니다. 그 더럽고 지친 발을 씻어주고 위로하는 일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부탁이며 사명입니다.

누구나 더러운 것들을 만지기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지친 발을 만지고 씻어주는 것을 즐거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용납하시고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의 발을 씻기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