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로 가라

황보 현 목사<해밀턴주사랑교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둘이 일치한다면 전혀 갈등은 없겠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 갈등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꼭 죄악 된 것이나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 경우도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본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십자가를 지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같이 흘러내릴 정도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처럼 겟세마네로 가야 합니다.

첫째로, 겟세마네는 기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마태복음 26:36)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이곳을 기도의 장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자주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주께서 ‘습관’을 좇아 거기 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이 될 정도로 항상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도 역시 기도로 이런 큰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1절에서 예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졸고 있던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경고를 받았지만 베드로는 기도해야 하는 시간에 기도하지 못했고 결국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는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시간에 깨어서 기도하셨던 주님은 십자가라는 엄청난 시험을 잘 이겨 내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잘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완전히 다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이 닥쳐올 때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대처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평강 가운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겟세마네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야 합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태복음 26:42)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일을 앞두고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만큼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으로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 먼저 채찍에 맞아서 살이 찢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동안 지쳐서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일들과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죽을 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당하게 되는 육체의 고통만해도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이며 심판입니다. 그러니 주님으로서는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주님은 다시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셔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겟세마네의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곳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때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역시 겟세마네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뜻과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길을 따라 겟세마네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겟세마네와 같은 기도의 자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보여주신 것은 당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서 꺾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권리까지도 겟세마네에서 포기를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나의 유익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나의 권리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데, 주님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접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겟세마네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겟세마네는 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자리가 됩니다.

셋째, 겟세마네는 영혼의 새 힘을 얻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야 합니다(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46)

앞서 말씀하신 38절의 말씀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입니다. 38절에서는 “내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46절에서는 “자~! 이제 한번 시작해 보자.”라는 분위기입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실 각오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런 기도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인간에게 이런 삶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도 역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 교제의 시간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는 유익이 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도 역시 이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십자가는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그 중차대한 일을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은 그냥 잘 감당하실 수 있었지만 굳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기도로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에 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크고 감당하기가 어렵게 느낀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겟세마네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꼭 여러분이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어느덧 그 일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 그 일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