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와 선교학

선교학과 성서신학의 협력을 위해서는 크게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선교의 의미와 신약성서에서 나오는 선교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선교학을 생각할 때에 쉽게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신약성서만이 선교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교회가 시작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고정관념에 의해서 구약성서에서 선교에 관한 본문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회에서 선교학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의 본질이 선교이고 교회의 시작이 선교라고 한 명제의 틀에 갇히게 되는 오류이기도 하다. 그 결과 선교학은 신약성서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약과 더불어서 구약도 선교의 흔적이 담겨있는 책이다. 이번 글에서는 간단하게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선교를 살펴보려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구약성서 안에는 선교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인식된 이유에는 구약성서를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설명하며,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이방나라들이 구약성서 속에서는 징계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 도식 안에서 구약은 이스라엘과만 연관이 있는 이야기로 여겨지게 되고, 이방인을 향한 선교가 구약성서에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 중심의 이야기는 구약성서 안에서 선명하게 흐르고 있는 주제들이다.

그럼에도 구약성서를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유는 “성서의 성격”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경화 작업은 이미 완료되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변하지 않는 “닫혀있는 책”이지만, 이와 동시에 성경을 이해할 때에는 영원불변하는 단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본문으로도 다양한 해석들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이전에는 구약성서가 선교와 관련이 없다고 인식됐던 본문들도 시대와 장소가 달라지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성경은 닫혀있지만, 열려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과거에 주목받지 못하던 구약성서에서 이해되는 선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냄”이다. 즉, 인간의 의도와 힘으로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이 우선이 아닌, 하나님의 의도와 인도하심으로 존재로서 전해지는 선교이다.

이것이 구약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선교로 이스라엘이 존재함으로 “어디 또는 누구를 위한 보냄”인지 이해한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Walter Kaiser는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만이 다뤄지는 것이 아닌, 언제나 이방인에 관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음에 집중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비록 이방인은 심판의 대상으로 묘사가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의 메시지는 이방의 구원을 이야기한다.”

이와 더불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민족과 온 세상을 위한 복의 통로, 다른 말로 구원의 통로가 됨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구약성서의 선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이야기이며, 그것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Kaiser는 전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로 “축복(blessing or to bless)”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Arthur Glasser는 전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선교의 특징은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Universal)이다.

그러므로 창조, 홍수와 바벨 사건 모두 온 세계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을 나타내는 선교의 사건으로 인식이 된다. 비록 반복되는 죄악으로 인해 심판 받지만 그와 동시에 온 인류를 향해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Arthur Glasser에 따르면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인 동시에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구체적으로 창조 속에서 나타나는 선교는 모든 것의 존재 이유가 되시는 하나님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향한 언약과 계획을 통해 선교의 의지가 창조 속에 들어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닮은 인간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과 같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은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선교의 목적이 됨과 같이 선한 창조의 모습이 회복되어가는 것은 선교가 인류에 국한된 것이 아닌 창조세계를 포함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매우 간략하게 구약성서에도 선교가 나온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성서를 이해하던 고정관념과 그 너머의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선교를 이야기한 후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민의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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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균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 신대원, 일반대학원 졸업(한국교회사 전공). 오타고대학교 박사(선교학, 이민자 신학, 종교사회학 전공). 파머스톤노스 한마음교회 담임. 알파크루시스 강사. 현지교회와 이민자를 연결하는 꿈을 가지고, 선교와 이민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한다. 관심분야는 선교학, 이민자 신학, 한국교회사와 아시아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