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5천 원의 행복

나는 물질에 대해 늘 두려움을 갖고 산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을 사용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남들의 눈에는 왜 저렇게 살까 의아해 보일 때도 있다. 저 정도 물질을 가졌으면 좀 누리고 살아도 될 텐데 왜 저리 궁상스럽게 살까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해 좀 과하게 쓰면 만족스럽거나 기쁘다기보다 그 자체가 고통스럽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다이소를 즐겨 찾고, 뉴질랜드에서는 Two dollars shop을 즐겨 찾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삶의 패턴이고 즐겁기 때문이다. 내가 절제하면 그 돈으로 한 명이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니 더욱 기쁘다.

이런 나의 삶을 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아내이다. 내 모습이 때로는 불쌍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때로는 좀 괜찮은 옷을 사 입히려고 애를 쓰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한번은 겨울에 집회 차 한국에 나간 적이 있다. 추운 날씨에 변변한 외투가 없어 처제 집에 옷을 빌려 입고 다니곤 했다. 하루는 보다 못한 아내가 강권적으로 나를 끌고 동네 AK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남이 보는 눈도 있으니 제대로 된 겨울 코트를 하나 사라는 것이다. 

간청을 하는 아내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한 코트 매장에서 적당한 것을 골랐다. 언뜻 가격을 보니 4만 5천 원이라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사기로 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보니 45만 원이었다. 기가 찼다. 무슨 옷 한 벌을 45만 원을 주고 사냐고 화를 내고 나와 버렸다. 아내가 따라 나오며 한 말이다.

“평생 거지처럼 살다 가슈!”

다음 날 아침에 동네 인근에 있는 광림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 시간만 나면 늘 가는 곳이라 그 주변 지역은 익숙했다. 그날 기도를 마치고 차를 몰고 내려오는데 내가 종종 저렴하게 옷을 사 입는 파크랜드 매장 마당에 재고정리 하는 옷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옷 하나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어제 사지 못한 겨울 코트였다. 급히 차를 세우고 가서 입어 보았다. 어제 본 옷과 같은 검은색 코트였다. 탈부착하는 모자까지 달려있어 어제 본 제품보다 훨씬 나았다. 가격은 4만 5천 원이었다.

이렇게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그 옷을 입고 아내에게 나타났다. 아내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좋은 옷을 어디에서 샀냐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시오,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시잖아요.”

차액 ‘40만 5천 원.’ 가슴이 뭉클했다. 이 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참 행복한 날이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8-19)

하늘에서 온 카톡
오랜 시간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다. 가장 고통 받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 금융 전문가의 강의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특별히 많은 교회와 기독교방송들이 이분을 초청하여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금융지식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있다. 최근에 한 기독교방송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이분의 경제철학을 다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 시대의 요셉이라고 이분을 찬양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참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되어 가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분의 금융지식에 대해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인의 물질의 법칙과 세상의 물질의 법칙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의 물질관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부를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신다. 아무리 뛰어난 금융기법을 따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내 힘과 노력으로 돈을 벌어 보려는 자체가 비신앙적이다.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할 마음을 주식이나 펀드 등에 빼앗기게 하는 이것은 분명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악령의 미혹임이 분명하다. 맘몬이 주인이 되어 있는 기독교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주식이 왜 나쁘냐’, ‘기독교인들에게 올바른 재정 법칙을 알려주는 데 왜 이것이 잘못된 거냐’라고 항변할 사람들이 많음을 잘 알고 있다. 
주식을 하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합법적 행위이다. 절대로 주식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온 마음을 다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든 이 악령의 역사를 막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애를 썼으나 기대와 같지 않아 깊은 아픔 속에 있을 때에 한 형제분에게서 감동적인 카톡이 왔다. 
나는 이 카톡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느꼈다. 이 카톡이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을 주는지, 나는 이 카톡을 ‘하늘에서 온 카톡’이라고 부르고 싶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어제 단톡방에 ‘새롭게 하소서’ 편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셔서 하마터면 저도 속을 뻔했는데 속지 않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근데 저도 3년 전부터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올해 하나님 은혜로 주식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 돈으로 올 초에 헌금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 돈을 의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돈이 있으니 마음
이 든든해지고 교만(?)도 싹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닌데 요즘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
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는데 제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부자 청년 이야기가 꼭 제 이야기 같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저의 전 재산을 다 팔아라 하면 저도 망설여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목사님!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청지기로 올바르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먼저 이 형제를 소개하면 우리 학교에 다녀간 한 자매의 남편으로서 부부(한경식, 엄미라 집사)가 의사로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지난번 코로나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할 때에 주저함 없이 5천만 원을 후원하셨던 분이다.

이분의 카톡을 받고 늦은 밤 국제전화로 1시간가량 성경이 가르치는 물질관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하나님을 향한 이분의 마음은 옥토 밭이었다. 

그동안 주식에 빼앗긴 마음이 얼마나 비신앙적이었는지를 깨닫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 집중하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사용해 달라고 그 자리에서 5천만 원을 보내왔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 돈은 성탄절에 전 세계 20여 개 기아지역에 귀하게 쓰였다. 하나님은 물질의 주인이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필요에 따라 공급하신다.
‘주식이 아니라 주님이다.’
주님에게만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 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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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태
뉴질랜드 Assembly of God Bible College 졸업. 오클랜드 인터내셔날처치 담임목사. AEC 및 다니엘캠프장 이사장. 저서로는 ‘이른 비의 기적’과 ‘늦은 비의 기적’을 통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물질의 법칙’을 알려 주는 재물이야기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