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신의 비밀스런 이름
미국의 고고학자인 프리처드(James B. Pritchard)의『고대 근동 문학 선집(The Ancient Near East of Texts –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CLC/기독교문서선교회, 2016.)에 나오는 이집트 신화 중 “신과 그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의 힘”(The God and His Unknown Name of Power)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나(Ra, Re)의 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생각했다. 나는 수많은 이름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모습은 여러 신으로 존재한다. 나는 아툼(Atum)으로, 영광의 호루스(Horus-of-Praise)로 불린다. 나의 부모는 나의 이름을 말해 주었고 내가 태어나기에 앞서 내 자녀들이 남녀 마법사들의 힘을 통해 내게 대항하는 존재를 만들 수 없게 하려고, 나의 몸에 그것을 숨겨두었다. … 나는 천지를 만들었고, 산들을 서로 연결하였고 게다가 그것들을 창조한 그(he)다. … 나는 시간을 만들어 날(day)을 탄생시킨 그(he)다. 나는 해(year)를 열며 강을 창조한 그(he)다. 나는 궁전의 작업에 있는 곳으로 가져오기 위한 살아 있는 불을 만든 그(he)다. 나는 태양이 하늘을 가로 지나는 것 속에서 3가지 신성의 형태로, 아침에는 케프리(Khepri)이고, 정오에는 라(Ra)이며, 저녁에는 아툼(Atum)이다.”

이집트 태양신인 라(Ra)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발음되지 않아야 하는 또 하나의 감추어진 신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과거에 그가 행한 창조 행위를 서술함으로 자신의 능력과 역할을 통하여 신적 존재를 증명합니다. 특별히 라(Ra)의 이름이 아침, 점심, 저녁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신성의 형태와 이름이 달라집니다. 즉, 라(Ra)는 그의 기능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처럼 여러 가지 역할을 다양하게 처리해 나갑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의 이름은 신에 관한 개념에서 중요한 의미인데 이는 신화에 나오는 신의 권위가 크고 힘이 강할수록 다양한 이름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이름에 따라 서술되는 많은 역할과 능력을 과시하며 그 신의 위상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신의 비밀스러운 이름과 관련된 대표적인 신화는 ‘이시스와 레의 이름에 관한 전설’(The Legend of Isis and the Name of Re)이 있습니다. 이 신화는 이시스(Isis) 숭배 제의 그룹에 의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전갈 제사장(Serqet)에 의해 모놀로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전갈 제사장은 이 신화의 내레이터로 지혜의 여신이면서도 마법(Magic)의 여신이기도 한 이시스를 독의 여신으로 섬기는데, 그 여신은 전갈로 표현되며 마법과 마술로 독을 제거하고 치유하며 전갈과 뱀을 물리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신화에서 ‘감춰진 신의 이름’은 너무나 신성하거나 혹은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이나 인간의 참된 이름을 소유한 자는 그 신이나 인간의 존재 자체를 소유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마치 주인이 노예를 굴복시키듯 신까지도 복종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시스는 이집트 최고의 태양신 라(Ra)의 숨겨진 이름을 알아내려고 합니다.

태양신 레가 늙어서 약해졌을 때 이시스는 교활한 방법을 사용하여, 레를 속이고 그의 이름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어떻게 태양신 레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감춰진 신의 이름’이 안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권능을 자기 것으로 삼아 이시스는 태양신 레로부터 비밀스러운 이름을 부여받아 레에 겨룰만한 힘을 가진 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고 신 레의 이름은 궁극적으로 발설되지 않았고, 그 이름이 이시스에게로 옮겨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시스에게 옮겨진 비밀스러운 이름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에게 이양됩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밀스런 이름은 최고신의 지위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발설되거나 발표될 수 없습니다. 발설된다면 최고신의 지위가 모든 신들에 의해 도전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신의 이름을 통한 그에 따른 역할과 기능을 하는 신적 개념은 고대 근동 신화 속에서 발견되는 신 이름의 특성입니다.

하나님의 이름:‘YHWH, 아도나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보통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그 사람의 능력, 특징을 다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름보다는 그 사람의 직업, 능력, 인격, 그리고 재산 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 이름이 가진 의미는 오늘날과 사뭇 달랐습니다.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사실상 이름은 일종의 또 다른 자기(alter ego)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름은 그 사람 안에 거하는 존재의 본질로 이해된 것이지요. 어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운명에 얽매여 그 이름에 구속된 삶을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서에서도 신의 도움이나 축복을 간구하는 신의 이름을 가진 인명(theophoric names)이 –예레미야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다.’, 엘리야는 ‘내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등-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설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불리는 하나님의 칭호인 ‘여호와’는 구약성서에 거룩한 네 문자인 ‘YHWH로 4가지 형태로 총 6,823회 나타나지만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YHWH‘로 계시하셨으나 성경은 이 칭호에 관한 명확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학자가 열띤 논쟁과 견해를 피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결론은 명확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냥 지나쳐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문제이기에 출애굽기 3:13-16절을 근거하여 앞으로 얼마 동안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신학에서 다루는 언어학적 그리고 존재론적 의미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는 출애굽기 3장은 이집트에서의 430년의 긴 침묵의 시간을 마치고 전면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YHWH의 역사적 현현(theophany)을 다루는 서론 부분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로의 왕실을 벗어나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칠 때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사자(messenger)를 만나 소명을 받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그러하기에 출애굽기 3:13-16절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의 세월을 이집트에서 보냈기에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다신론적 신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질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What is his name?)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Then what shall I tell them?)”(출 3:13)에서 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리라 생각했을까? 입니다.

이는 그 당시의 이집트의 다신론적 신관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계시한 ‘YHWH’가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하는 의문과도 연관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은 하나님은 자신을 새로운 신으로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이스라엘 조상 대대로 믿었던 그 신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a). 창세기 4장 26절에는 이미 에노스 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고, 하나님의 이름 ‘YHWH’가 족장 시대 이전부터 불렀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12장 8절에도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다른 족장들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창 13:4; 21:33; 26:25). 또한 약간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창세기의 등장인물들이 약 50회의 본문 속에서 자신들의 입으로 ‘여호와’란 고유명사를 분명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창 24:35; 26:28; 29:32; 30:27 등).

유대인 신학자 부버(Martin Buber)는 이러한 모세의 질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았으나 그 이름이 내포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본문의 13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인가를 질문할 때 의문사 ‘누구’(who)가 아니라 ‘무엇’(what)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What is his name? Then what shall I tell them?”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에서 “이름”과 “무엇”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질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내포하는 기능 혹은 그 이름의 배후에 숨겨진 의미와 해석, 즉 역할을 묻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관심은, 하나님의 특성과 역할에 관해 새롭게 계시된 내용과 이에 맞는 계시 받은 이름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을 받은 자신의 소임을 확인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과거 조상의 하나님은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여러 번 조상에게 하나님 자신을 증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자손은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국가이고 현재 이스라엘은 압제당하는 백성일 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질문은 과거에는 조상에게 자신을 하나님으로 나타내시고 능력을 보이셨으나 현재 노예로 전락하여 노역과 압제와 부르짖음만 있는 그들에게 과연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모세의 질문을 뒤집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출애굽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려는 여호와의 기능적 이름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특성과 능력을 물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처: 김용규,『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IVP 출판사, 2021)을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통해 책에서 다뤄지는 기독교 신학의 내용을 필자의 관점에서 재 인용과 재 해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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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봉조
총신대 신대원 졸업. 세계선교교회 담임. “언어는 존재의 힘이다”는 통찰을 빌려 신학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의 언어로 하나님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하나님 사랑에 대한 삶의 귀중한 자리를 확인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