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바다라면

일러스트_석용욱

물의 흐름을 읽고 타거나 거슬러 헤쳐가는 모든 행위가 ‘서핑’이 된다. 먹구름은 사라지고 늦여름의 태양이 바다 위로 쏟아진다.


대자연 속에서 되찾은 즐거운 웃음소리와 파도를 타며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는 아이들과 부모는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마음 가득 푸른 바다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하늘과 푸른 빛을 닮은 바다는 모두에게 큰 행복이다.


파도와 조류 및 이안류가 바람을 만나고 달과 태양의 기조력으로 서프Surf 곧, 밀려오는 물의 흐름을 만든다. 그 서프의 흐름을 읽고 타거나 거슬러 헤쳐가는 모든 행위가 바로 ‘서핑’이 되는 것이다.

큰 파도이든 작은 물결이든 그렇다. 클래식 롱보드이든 하이퍼포먼스 숏보드이든 말이다. 결국 행복을 주는 서핑은 이를 온전히 이해할 때도 찾아오겠으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즐거움을 얻는다. 이 즐거움과 행복을 깨닫게 될 때 서핑을 진심으로 깊이 배웠다고 하겠다. 이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는 커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이 주는 놀라운 원리와 복잡한 이론들 안에서 누리는 큰 즐거움이다. 이러한 문화들의 본질은 하나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행복해하며 누리고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타인과 이웃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더욱이 삶의 무게로 인해서 그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멀어진 상한 심령은 커피의 깊이만큼 복잡하다. 커피이든 서핑이든 진심으로 알려면 참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영혼의 삶도 깊이 알려면 많은 시간 함께해야 한다. 깊고 넓은 한 영혼의 마음, 한 사람의 심리는 복잡하다. 커피 한잔하자는 티테이블로의 초대는 한 영혼의 복잡한 심리와 다사다난했던 시간의 불안을 조금은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는 도구가 된다.

민기를 그렇게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커피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을 너무 좋아해서 늘 교회에서 살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가족 배경, 삶에서 목격한 충격적 사건들이 켜켜이 쌓여, 겉으로는 건강하게 자라는 듯 보인 민기에게 알 수 없는 불안증이 생겼다.


불안을 자극하는 상황이나 문장, 심지어 특정 단어만 나와도 과민 반응을 일으켰다. 결국 십대까지 지속된 과민 반응으로 PTSD 진단을 받았다. 스스로를 조현병으로 의심했지만, 담당의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포용 속에서 민기는 조금씩, 그리고 놀랍도록 정상적으로 바뀌어갔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리암이 민기를 마음 깊이 끌어안고 살기 시작한 때 말이다.

“민기가 가볍게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카페에 오라고 했어요. 근데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마감 시간에 오라고 했죠. 카페를 정리한 후 조용히 시작된 대화가 갑자기 엄청 깊어졌어요. 녀석이랑 이렇게 이야기 나눈 것도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자신의 정신질환 이야기가 길어져서 조심스럽게 먹는 약들을 물으니 줄줄이 나오더군요. 몽롱해지는 강력한 안정제부터 식욕을 도와주는 약까지 다양했습니다. 꾸준히 잘 먹고 많이 안정을 찾아서 이제는 수면제로만 지낸다고 했어요. 어휴.”

리암은 마음속 깊이 민기의 아픔을 느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깊은 진심이 느껴졌다. 쏟아내듯 말하던 이야기들 속 들숨과 날숨에서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심은 대부분 깊은 공감에서 생기니 민기의 상황을 그만큼 품고 산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렇게 민기와 같은 청년들을 끌어안고 주야로 교회를 찾아 기도하던 리암의 모습 또한 스쳤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주변에 제법 있다. 우울증, 조증, 분노조절장애, 불면증, 공황장애 등의 아픔을 호소하는 청년들. 이들에게 감히 가벼운 위로로는 상처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다.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민기에게 다른 친구들처럼 서핑으로 삶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주려 해봤지만 실패였다. 심리적인 이유로 생긴 식욕부진과 일반적이지 못한 근력이 이유였다.


이런 호소를 하는 이들은 지금 아픔을 겪는 본인이기도 하지만 종종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랑하는 가족들일 경우도 빈번하다.


심한 경우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는 이들도 있으니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대체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는 것일까? 때론 밤을 새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딘가에 맘 편히 털어놓을 수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때 마음을 여는 놀라운 말, “커피 어때?” 망설임 없이 ‘휙’하고 날아온 청년들과 함께 스페셜티 커피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마치 스스로 우리에게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이 좋아하는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커피 한 잔에 밀도 높은 대화로 채워진 시간을 보낸다.

커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꽉 찬 삶을 사는 방식 중 하나이다. 한 사람, 한 영혼이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이들은 이러한 나의 의도를 알아가며 더욱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접점을 이루며 젊은 인생을 마주하는 삶은 나에게 큰 특권이고 행복이다. 덕분에 맛있는 커피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커피가 바다라면 함께 바다와 같이 다양한 청년들의 삶을 마주하고 그들과 날과 밤을 보내면서 커피하며 우리의 삶과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민기와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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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너무 행복해하는 커피 노마드이자 문화선교로 영혼을 만나는 선교사. 커피, 서핑과 음악을 통해 젊은 이와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며 밤낮이 없는 커피 테이블 호스트를 자청하여 청년 선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