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무용(天地無用)

정명환 목사<뉴질랜드광림교회>

예전에 한국에서 청년담당목사로 섬길 때에, 한 청년이 일본어 통역과 번역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페이스북 친구로 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한번은 이 청년의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청년은 사진을 올려놓고, [오늘의 공사장 일본어]라는 제목과 함께 어떤 상황에 쓰이는 일본어 한자인지를 묻는 질문을 남겼다.

“천지무용 – 하늘 천, 땅 지, 없을 무, 쓸 용”.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결국은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어서 댓글을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뜻은 “위 아래를 뒤집지 마시오.”

우리가 택배 같은 걸 받을 때도 그렇고, 또는 어떤 상자 같은데 보면, 영어로 “This side up” 이라고 쓰여 있거나, 또는 위를 향한 화살표 그 아래 밑줄이 그어져 있는 픽토그램이 그려져 있기도 한데, 이 모든 것이 다 같은 뜻이다. “천지무용 – 위 아래를 뒤집지 마시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큰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전하신 후에 정리하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전하시고 마지막 정리를 하신다. “지금까지 전한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의 말씀을 잘 들었으면, 그대로 잘 행하라. 그래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라.” 그러면서 비유로 주신 말씀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다.

얼마 전 락다운이 끝나자마자 교회 주변에 계속해서 공사가 이어졌다. 교회 앞 도로를 아예 폐쇄를 해놓고 차를 가지고 집을 나갈 수가 없을 정도의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도로와는 또 별개로 교회 뒤쪽에서 주택 공사가, 사택 뒤쪽에서도 주택공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면서 수많은 공사장 차량이 돌아다니고 작업을 하는데,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온 교회가 흔들리고, 몸에 막 진동이 올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공사이길래 그렇게 요란한가 보았더니, 여기 저기 기초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 공사는 공사장 차량 소리만 요란했는데, 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터를 닦는 기초공사는 온 사방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만큼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초가 중요하다. 바닥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려고 할 때가 많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중요한데, 잎사귀만 무성하게 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건물의 기초가 중요한데, 외관만 아름답게 꾸미고자 할 때가 많다.

내 속 사람이 중요한데, 겉만 멋지게 보이려고 한다. 내 신앙의 중심이 중요한데, 믿음의 뿌리가 중요한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도 한다. 이게 다 뒤집는 것 아닌가?

“천지무용 – 위 아래를 뒤집으면 안 된다.” 위에 있어야 할 것은 위에 있어야 하고,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은 아래에 있어야 한다. 특별히 신앙의 삶 속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영적 원리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 그 마지막 대미 역시 이에 대한 말씀이다.

말씀과 기도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말씀 위에 서 있는가? 내 생각 위에 서 있는가?’ ‘내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가? 기도 없는 내 뜻 안에 거하는가?’ 이 작은 차이이다.

사사시대를 관통하는 한 구절의 말씀이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1장 25절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래서 이스라엘에 왕을 세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왕 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생각과 주관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큰 문제였다. 그렇기에 왕을 세워도 문제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왕이 세워지자 이제는 왕의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의 말은 무시하고, 점점 더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길의 끝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목회자로서 교회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한 강단에서 항상 기도하곤 한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의 반석 위에 서면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염려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이 없고, 흔들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때로 신앙생활 하면서 시험에 들었다고 한다. 아무개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한다. 아무개 때문에 교회 못 나가겠다는 말도 한다. 그런데 이 아무개씨는 어떤 교회에도, 어떤 회사에도, 어떤 공동체에도 존재한다. 물론 그 아무개로 인해서 낙심되고, 화도 나고, 상처도 받고, 교회 가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무개로 인해 내 신앙을 잃어버리면 나만 손해 아닌가? 그렇기에 말씀과 기도 위에 내가 먼저 굳건히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어지간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무용(天地無用) – 천하에 쓸모 없는
“천지무용” 오늘 제목이다. 처음에 소개한대로, 이 사진과 글을 일본어 통역과 번역하는 청년의 페이스북에서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댓글로 보고 나서야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정답을 말하는 댓글, 자기 생각의 댓글, 장난스러운 댓글들을 달았는데, 눈에 띄는 하나의 오답이 있었다. 사실 그 오답이 오늘 내용 전체의 가장 핵심이다.

그 오답이 이렇다. “천지무용 – 천하에 쓸모 없는” “하늘 천, 땅 지, 없을 무, 쓸 용” 딱 한자 그대로 직역해서 풀어보면, “하늘과 땅에 쓸 데가 없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오답이 정답과도 명확하게 연결이 된다.

본래의 뜻 “위 아래를 뒤집지 마시오.” 왜 뒤집지 말라는 것인가? 뒤집으면 안 되기에 뒤집지 말라는 것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안 되는 물건을 뒤집어 버리면 좋은 물건이 천하에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삶이 다 마찬가지이다. 위 아래를 뒤집으면 안 된다. 위 아래를 뒤집으면 안 되는데, 위 아래를 뒤집어 버리면, 천하에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다. 위에 있어야 할 것은 위에 있어야 하고,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은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믿음의 기초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반석과 같은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반석이 무엇인가? 말씀과 기도이다. 내 믿음의 정체성이다. 나의 구원의 확신이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에,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