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통일의 새 날이 올 때까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시록 22:12-21)

2023년, 우리민족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와 고통이 갈등으로 남아 있는 휴전의 70년 희년을 맞으며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해가 78년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70년 희년의 의미가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미래를 향하는 길목이 되기를 기원하며 NZCL(북한크리스천살리기)을 통한 복음의 길이 확장되기를 축복합니다.

새해의 새 날을 바라보며 민들레 홑씨 마냥 세계로 흩어진 우리 동포들 가운데 일제 강점기 불운의 시대에 태어나 모진 고난과 수모를 견디며 살아온 러시아의 극동지역 사할린 동포의 애환을 싣습니다.

비록 서로 먼 곳에서 살지만 한 혈통이요 같은 족보를 가진 형제들임을 기억하며, 더구나 믿음 안에서 이 땅에서 없어질 것 같았던 삶으로 영원한 시간을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한 몸의 지체들로서 가슴에 남겨두고 기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2월, 러시아 ‘사할린의 코르사코브’의 망향의 탑!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거센 눈바람 가운데 홀연하게 버티고 있는 항구의 언덕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강제 징집을 당한 험난했던 시대의 불운한 동포들이 1938년 세계 제2차 대전이 종국을 향해 치열할 때에 그 전쟁의 희생물로 일본에서 재 징집을 당하여 극한의 땅 사할린스크에 유배되었다가 그들은 끝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45년 8월, 애타게 그리던 광복을 맞아
동토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4만의 동포들이
고국에 돌아가기 위해
이 코르사코브 항구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내버린 채 떠나가 버렸습니다.

소련 당국도, 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도 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이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조국으로 돌아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은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돌아오지 않아
한릴 없어 빈손 들고 민들레 꽃씨 마냥 흩날려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사할린 한인(당시 회장 한덕수)회와 협조하여 유즈노(남쪽) 사할린에 세워진 추모비가 있습니다.

“떠나온 고향이여!
돌아 갈 수 없는 조국이여,
그리움은 흘려 몇 구비 흐르는 것이
어찌 강물뿐이더냐

잊지 않고 간직했던 고향 주소여!
베갯머리 적시던 고향 생각은 꿈길이 아니라
꽃 길이었네.
조국에 잊히고 시대에 뒤엉키며
역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세월.

고난 가득한 삶에도
눈물은 세월과 함께 마르고
고통의 밤에도 새벽은 밝았다.
고난을 넘어 왕생 한 길.

생명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다 이제 여기 묻혔다.
부디 잊지 말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는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 중 략 –
(군항도 작가 한수산)

이곳 코르사코브 항구를 접한 척박한 땅에 한인 회장 이태준씨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삼남매의 장남으로 고아처럼 자랐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더욱 깊게 페인 주름살 위로 회환의 지난 시간을 꺼냅니다.

“나는 러시아 또래들에게 무참하게도 차별을 당했습니다. 너무도 많이 맞았으며 이유 없이 학대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참 많이 울며 힘들게 자랐습니다. 그 때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조국이 없으니까 이런 천대를 당하는구나, 내가 엄마가 없으니까 이렇게 서럽구나! 어떻게 든 고국을 잊지 않고 힘을 키워서 내 후손들은 나처럼 되지 않게 하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는 주변의 동포 한인들이 거의 잊어버린 모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합니다. 규모있는 빌딩을 세우고 자동차와 건설업을 하면서 지금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또 다른 농작물 사업에 땀을 흘리며 동포들의 살림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그를 만나고 목이 메었던 마음에 벅찼던 것은 숱한 고난을 당했으면서도 전혀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모질게 버터 온 상처투성이의 그 아픈 가슴에 도리어 북한의 노동자들을 같은 형제요 불쌍한 동포라고 극진하게 보듬어 주며 보살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할린에는 북한의 평양에서 온 건축 노동자 일천여명 이상이 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들이 건축한 고층 아파트나 건물들이 러시아인들의 건축 기술보다 전혀 뒤지지 않았으며 더 튼튼하고 모양도 드려남에 있습니다. 그런데 실컷 부려 먹고는 인건비를 주지 않거나 아예 피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코르사코브 항구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배를 잃었던 그 후손들이 눈물의 섬 사할린 땅에서 굳세게 뿌리를 내리고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복음의 은혜가 이 땅 동포들을 보듬어서 북한을 향한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시록 22;12)

우리의 시간은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의 달란트를 받았는가 하는 것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하는 삶이 귀합니다. 작은 일은 어쩌면 하찮고 폼 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그냥 지나가는 숨겨진 부분의 관심일 수 있습니다. 일상 가운데서 흔한 일이지만 겸손의 자리에 있으면 볼 수 있는 섬김의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만들어지고 감사하면 기회와 능력이 되는 주님께서 주시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절)

그냥 지나친 것이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너무 물 붓듯이 부어 주신 복음의 은혜를 너무 값없이 홀대하지 않았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슴에 주님의 흔적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흔적은 받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 다른 사람을 향하는 긍휼입니다.

복음은 긍휼의 강을 따라서 주님의 날까지 끊임없이 흘러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저 동토의 땅 북한을 향해서 복음통일의 새 날이 올 때까지!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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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길
총신신대원 졸업. 영국 런던개혁침례신학교 신학석사 과정 수료. 국제난민기구와 두만강 유입 북한 난민에게 비상 식량 지원하는 ‘두만강 프로젝트’ 운영. 현재 북한 크리스천살리운동 대표. , 에젤, 2020 발행. 한반도에도 복음적인 통일이 이루어지질 소망하며 북한 선교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