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과 소음

이 세상은 요란하나…이 세상은 늘 변하고”는 새찬송가 414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의 1절과 2절 서두에 나오는 가사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서나 요란하고 늘 변하기 마련이다.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지금은 대면에서 외면으로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빛낸 사람이 아니라 빚 진 사람이 늘고 있다. 빛내는 사람과 빚내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세계는 지금, 돈이 기준이고 수준의 척도이다.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최대 가치로 여기고 살면서 절대적으로 돈을 숭상하고 숭배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거짓말과 거짓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지나온 세월은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야곱의 고백과 같이 지나온 시간은 고단한 세월이었다. 일본 제국에서의 독립과 서로 다른 사상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과 독재로부터의 자유와 민주 사회를 향한 치열함과 경제 성장을 향한 절박한 시대의 요구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먹어야 했고, 배워야 했고, 돈 벌어 살아남아야 했다.

무너지고 망가진 사회는 기존의 가치와 의미가 상실되고 새 질서를 향한 혼란과 혼돈을 거치면서 물질적 축적을 성공과 성취의 척도가 되었다. 돈을 향한 탐심과 탐욕은 사리사욕과 부정과 부패로 이어졌다.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다가 들통나 구속되어 감옥에 가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됐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재물로 인한 죄와 죄의식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위로와 안식을 얻으려고 하거나 신의 이름으로 스스로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거짓된 구제를 일삼는 사람도 있다.

거룩으로 위장하지만 거북한 오만은 숨기지 못한다. 진정으로 존중받는 어른이 없고 노인만 있는 이유는 자신의 탐심과 탐욕을 감추고 돈을 얻고 이익을 도모하고 명예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은 빛내는 인생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자신이 사람의 선한 것으로부터 빚내는 인생이다.

사람 사이에서 빛 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 요란하게 시끄러운 사람이 있다. 진정한 존경은 자신을 죽여 사람을 살리고 정화 기능까지 갖춘 소금처럼 살 때 온다. 그러나 빛이 되려고만 하다가 실제로는 소금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소음이 되어버린다.

소음은 아파트 층간과 벽간 그리고 복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빛이 되려고 소음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가 아프고 통증이 동반하고 멀미가 나는 듯 미식거리거나 토하려고 헛구역질이 나는 증상이 나타난다. 사람이 대면에서 외면으로 바뀌는 원인이다. 빚과 소음에서 먼저 소금이 되면 소금꽃이 되어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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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현
본지 발행인.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생명구원”(요한복음 20:31) 위해 성경에 기초한 복음적인 주제로 칼럼과 취재 및 기사를 쓰고 있다. 2005년 창간호부터 써 온‘편집인 및 발행인의 창’은 2023년 446호에‘복 읽는 사람’으로 바꿔‘복 있는, 잇는, 익는, 잃는, 잊는 사람과 사유’를 읽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