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로 모여드는 사람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밤이 깊어 지자 멀리서부터 이곳 스탠리 베이(Stanley Bay) 바닷가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이 저녁 바다 건너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보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환송하고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었다.

이곳 바닷가는 새해 0시를 기해 축하의 폭죽을 터뜨리는 스카이 타워의 모습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기에 12월31일 밤이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스카이 타워의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뻗어 올라 하늘에서 마음껏 자태를 뽐낸 불꽃들이 밤바다 위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꼭 연말연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장관이었다.

우리도 나가보자는 아내의 말에 나도 아내와 같이 바로 집 앞의 바닷가로 나와 사람들 사이에 끼었다. 많은 사람이 이미 바닷가에 나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손에 샴페인 병과 잔을 들고 있었다. 새해를 여는 폭죽 소리에 맞춰 가족 친지와 더불어 축배를 들려는 모양이었다.

평소엔 인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던 바닷가 이 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북적거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들뜰 수 있는 분위기였다. 맞은편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스카이 타워는 푸른 빛 붉은 빛을 번갈아 발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이곳 바닷가와 도심을 크고 너른 띠로 나누어 놓듯 바다가 잔잔한 검은 물결로 출렁였다.

어둠을 채우는 Happy New Year!
“오 분 전이에요.”라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자 “우와!” 하며 몇몇 사람이 바다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오 분만 있으면 해가 바뀌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나도 차츰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폭죽이 터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몇 사람이 입을 맞추어 “열아홉 여덟 일곱,”하고 세기 시작했고 곧이어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입을 맞추어 “셋 둘 하나!” 하는 다음 순간 맞은편 스카이 타워 꼭대기 양쪽에서 불이 튀어나왔고 튀어나온 불이 하늘로 올라가 꽃 모양으로 퍼졌다.

사람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우와!” 하는 함성이 튀어나왔다. 곧이어 서로 서로에게 주고받는 “Happy New Year!”가 바닷가 어둠을 가득 채웠다. 맞은편 바다 건너에선 계속해서 폭죽이 터져 올랐고 가지각색의 불꽃 모양들이 밤하늘을 밝히며 퍼져 올랐다가 검은 바다 물결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늘의 불꽃, 바다의 검은 물결,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Happy New Year’,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별안간 ‘해가 바뀐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계절도 해도 원래는 없었던 것인데 사람들이 편의상 만들었고 이제 와서는 그것이 바뀔 때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공연히 가슴이 허전해졌다. 그런 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에서 터져 내리는 불꽃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 흔들리는 손 너머로 멀리 하버 브리지가 있었다.

그 다리 밑에서 이곳 바닷가까지 어둠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검은 바다의 물결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아뽈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20세기 초 프랑스 시인)의 그 유명한 시(詩) ‘미라보 다리’의 한 구절이었다.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로 만들어진 다리 아래로
영원한 시선의 피로에 지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鍾)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터져 오르는 불꽃을 향하여 환호하는 사람들의 손이 만들어내는 손의 물결, 허공에서 터지는 불꽃도 마다하고 한밤중 어둠도 마다하고 묵묵히 흐르는 바다의 물결, 그리고 멀리 이곳 오클랜드의 남과 북을 잇는 다리 하버 브리지를 보면서 나는 문득 묵은해에서 새해로 바뀌는 세월의 물결을 느꼈나 보다. 그 옛날 학창 시절 애송했던 ‘미라보 다리’는 내 상상의 실타래를 풀어 제쳤다.

지금 이곳 허공을 향하여 흔드는 사람들의 손이 안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고 ‘Happy New year’를 주고받는다면 우리의 시선(視線)도 새로워지고 흘러가는 세월도 새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시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했을 것이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얼마나 인생은 느리고
또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鍾)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지금 새해를 맞는 이 바닷가에서 나는 시인과 같은 마음을 가져본다. 그것이 실패한 사랑이었든 쓰라린 과거였든 혹은 가슴 아픈 회한이었든 오늘 저 물결 따라 흘러가게 놓아주자. 놓아주기 힘든 것들을 미련 없이 놓아줄 때 우리의 인생은 고삐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느려지고 그때 여유를 가지고 앞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은 강렬해질 수 있다.

가버린 시간도 그 시간 속에 녹아있는 과거도 훌훌 놓아주자. 어차피 시간이란 원래 없었다. 아니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무한대의 영원한 시간이었다. 그 안엔 날도 달도 해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필멸(必滅)의 인간들이 스스로의 유한성을 깨닫고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고 그것들이 지나가 버린다고 한탄하고 탄식할 따름이다. 시인은 계속해서 노래했다.

날이 가고 주일(週日)이 지나가지만
가버린 시간도
옛 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江)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鍾)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실패한 사랑, 가버린 연인에 대해서 단념하듯 탄식하고 있다. 젊은 시절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던 그때엔 그냥 이 구절을 멋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읊었었다. 그러나 오늘 이 바닷가에서 문득 내게 떠오른 이 시는 그때와는 다른 의미로 내게 부각되어 왔다.

시인이 탄식했던 가버린 시간, 돌아오지 않는 옛사랑은 이제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는 놓아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벌써 오늘 내 앞에 흐르는 저 검은 바다의 물결 속에 놓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내 가슴을 흔들어 놓는 구절은 오히려 이 시의 후렴이었다.

밤이여 오라 종(鍾)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인제 그만 들어가요. 추워요,”라고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이미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바닷가는 썰렁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제야(除夜)의 이 저녁 밤은 이미 와있었고 종(l’heure: 프랑스어로 시간)은 하늘의 불꽃이 되어 이미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흐르는 밤바다의 물결 속에서 세월도 흐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남아있는 이 시간이 2022년이든 아니면 2023년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은 내겐 영겁의 시간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며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미 다가온 새해는 그 안에 내가 있고 그래서 의미가 있고 귀하다.

이제 더 이상 지난해를 아쉬워하지 않으리라. 오히려 다가온 새해를 향해 외치리라. ‘종(鐘)이여 울려라 나는 남는다’고. 그리고 이 새해를 의미 있고 귀하게 보내리라.

한밤중의 거리는 텅 비었지만 내 가슴은 시(詩)가 전해준 희망으로 한껏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