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째 주 찬송/598장(통244장) 천지 주관하는 주님

교회건축은 창조, 성육신, 부활 등 ‘하나님의 나라’ 메시지

태초, 에덴동산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가장 한가운데 있었습니다(창 2:9).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인간에 대한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자 하신 것일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2:9)

공간은 의사전달의 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배당은 단순히 모임의 공간인 건물(建物)이 아니라 건축(建築)입니다. 예배당은 건축을 통해 창조와 타락,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종말을 말하고 기독교적인 구속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위치가 중요하고, 그 공간배치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생각 없이 지어진 교회당이라면 자칫 바벨탑처럼 그릇된 생각들과 이념들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배당은 원래 동향(東向)으로 짓습니다. 입구가 서쪽이고 제단이 동쪽이지요. 초대교회 이래로 예루살렘을 향하던 관습이기도 하고, 해 뜨는 곳과 관련하여 ‘의(義)의 태양’이 솟는 쪽을 향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주일 아침 스테인드글라스에 떠오르는 햇빛은 가히 시온의 영광을 상상케 합니다.

우리나라 교인이 지었다는 찬송 시 ‘천지 주관하는 주님’은 1900년 발행된 ‘찬셩시’ 제3판에 처음 실렸습니다. ‘찬셩시’는 1895년 북 장로교 선교부 그레함 리(G. Lee)와 기포드 부인(Mrs. D. L. Gifford)이 편찬 간행한 장로교 찬송가인데, 1907년 제12판까지 증보되었습니다.

곡명 RATHBUN은 작곡자인 콩키(Ithamar Conkey, 1815-1867)가 지휘자로 섬기던 미국 코네티커트 주 놀위치(Norwich)의 중앙침례교회 성가대 소프라노 대원인 래스번(Beriah S. Rathbun)의 이름입니다.

1849년 어느 주일 저녁, 얼마나 폭우가 쏟아졌는지 찬양순서를 맡은 찬양대원이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찬양대 지휘자인 콩키는 찬양도 못하고 마음이 몹시 상한 가운데 예배를 드렸는데, 집에 돌아온 후 마음이 진정되면서 깨달았던 것이죠. 찬양이 연주가 아닌 것을 말입니다.

찬양대 지휘자들이 종종 시험에 빠지곤 하는 경우인데요, 찬양이야말로 지휘자가 자랑하며 뽐낼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 저녁에 교회 담임인 히스칵스(Hiscox)목사가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사도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는 대목이 떠나지 않아 드디어는 큰 감동을 받고 이에 관련된 찬송 시를 찾아내 곡을 붙인 것이지요.

그 시가 바로 영국의 보우링(John Bowring, 1792-1872) 경이 지은 찬송 시 ‘주가 지신 십자가를’(통 148장)입니다. 그리고선 그 저녁 참석한 단 한 명의 소프라노 단원의 이름으로 곡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위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김명엽의 찬송교실’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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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