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면 누구나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가슴 아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조금 전만 해도 악동처럼 난리를 치던 아이가 맞나 싶고 잠들기 직전의 소동이 거짓말 같다. 천사 같은 얼굴을 보며 ‘뭣 하러 이런 예쁜 아이에게 야단을 쳤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새벽 늦도록 놀아 달라는 은율이를 야단쳐 재운 적이 몇 번 있다. 잠든 눈가에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마음이 아려 통통한 볼만 연신 어루만졌다. “미안해. 내일은 끝까지 놀아줄게.”
20대 후반 주부가 새벽녘 맘카페에 짧은 글을 올렸다. 종일 집안일 하느라 눈 맞추고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맘이 들어 내일은 집안일을 좀 미루더라도 아이와 놀아주겠다고…. 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엄마라고 댓글을 달아 주었다. 또한 둘째가 생긴 뒤로 잠든 맏이의 얼굴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눈물이 난다는 엄마들도 많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갑작스러운 동생의 존재에 관심의 순위가 밀리기 때문이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글을 쓰는 내 옆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만져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보니 뒷머리까지 촉촉하다. 자는 동안에 왕성한 세포분열을 하는 통에 열이 난다. 자면서도 성실히 성장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의 얼굴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은율이가 갓난쟁이일 때 나는 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새벽에 깨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그만큼 잠자는 아이들 얼굴은 예쁘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엄마의 감정이 진짜다. 그것을 믿으라. 또한 잘 때 보이는 천사 같은 얼굴, 그것이 아이의 진짜 모습이다. 은율이가 잠든 모습을 보며 미안함을 느낀 다음 날이면 깨자마자 더 많이 안아주고 뽀뽀해준다. 전날 야단쳤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준다. 막 깨어 따스한 아이는 밤새 성장하는 동안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엄마, 우리 놀자”며 맑게 웃는다.
전날 느낀 후회의 감정들을 기억하면서 이 순간을 영원으로 건져 올리려 노력한다. 쫓기듯 급하게 생각했던 집안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은율이가 4살 무렵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님의 『우리 아이 괜찮아요』를 접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자존감, 내면 문제, 그리고 경청과 공감 등을 다룬 책을 주로 읽었는데 그 책들을 통해 큰 흐름을 잡고, 서 교수의 책으로는 사례를 통한 개별적 상황 대처법의 도움을 얻었다. 적절한 시점에 좋은 책을 사 온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어느 날 책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육아의 관점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요. 그때가 될 때까지 아이와 그냥 이 순간을 버텨보세요. 잠자는 아이를 안아보세요. 따뜻합니다. 분명 엄마 마음에 위안이 될 거예요. 아이와 함께 악착같이 즐거운 일을 해야 합니다. 함께하면 기분 좋아지는 일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실천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힘을 얻고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이 자체로부터 행복을 찾고 아이와의 여정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바로 아이 안에 있는 따뜻함이 엄마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그 후부터 은율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힘이 더욱 커졌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밤이면 육아서를 펼치고 정신과 의사선생님도 만나고 육아 멘토 언니도 만났다. 궁금한 것, 고민거리 대부분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곧 다음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이가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다 못해도 좋다. 상관없다. 좋은 시간을 갖고 서로 행복해지는 데 집중하자’ 쪽으로 방향을 잡아 보세요.”, “어떤 일은 적당히 해내며 마음의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의사에게서 ‘아이가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했고 위로가 되었다. 그즈음 살림에 속도가 붙으며 육아와 살림 둘 다를 잘 해낼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지냈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날에는 자책과 무기력에 빠져 지냈다. 잠든 아이를 보며 미안함을 느끼는 날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 그 반증이었다.
‘잠자는 아이를 안아보세요. 따뜻합니다.’라는 구절은 눈물이 핑 돌 만큼 감동을 주었고 육아에 있어 분수령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잠든 은율이를 보면서 미안함을 느끼는 횟수가 훨씬 줄었다. 남편에게도 힘든 부분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구했다. 남편은 집안일을 거들어주었고 은율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놀아주었다. 주말은 집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혼자 하려 하지 않고 내가 편한 마음이 되어 도움을 구하자 갈등 없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안하다면 당신이 지쳤다는 의미일 수 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라는 신호이다. 다음에 해도 좋다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잠든 아이를 안아보자. 나처럼 당신도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반드시 아이와 행복한 일 한 가지를 해보기로 하자.
잠든 아이를 보며 미안한 순간이 잦다면, 당신이 조금 지쳐 있다는 뜻 일 거예요. 우리, 조금만 쉬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