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학교 이야기

필자가 섬겼던 교회 중에 거의 매주 다른 교회에서 탐방 오는 교회가 있었다. 앞의 글 들에서 거론된 군산드림교회(임만호 목사 시무)이다. 아예 탐방을 전담하는 교역자가 있었을 정도였다.

교회 학교 부서들을 돌아보며 담당 교역자나 부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예배하다 보면 예배 공간 뒤쪽에 낯선 분들이 이름표를 목에 걸고 유심히 살피고 적고 사진을 찍는 광경을 보곤 했다.

얼마나 열심히 교회 학교 시스템과 예배 모습을 기록하고 질문하는지 모른다. 모든 탐방이 다 끝나고 교회 학교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담임 목사의 목회 철학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의도가 담긴 프로그램이 있어도 결국 담임 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정말 그와 같은지에 따라 실현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슬픈 것은, 한참 흥분하고 들뜬 마음으로 자기 부서와 교회에 접목시킬 것들을 기록하며 질문하다가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담임 목회자에게 달려 있다는 마지막 결론을 들을 때 안색이 어두워지는 부장 교사나 교역자를 볼 때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기를 “담임 목사님과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권면한다. 무슨 말인가? 결국 그 교회의 수준은 담임 목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 같은 담임 목회자들에게 경종이 되는 말씀이다.

한국에서 교육 디렉터를 하며 교회 학교 교육에 대해 몰입하던 때였다. 앞에서는 분명히 교회 학교 아이들이 교회의 미래라고 하는데 정작 교회 학교에 배정되는 예산은 교회 전체 예산에 비했을 때 몇 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아니 매년 그래왔다.

그래서 매년 예산 위원회가 열릴 때면 부서의 부장들과 교역자들은 예산 위원회 담당 장로님들을 따로 만나서 로비 아닌 로비들을 하면서 부서 예산 증가의 이유들을 설명해야 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당회에 올라가서는 예산이 이전과 같이 깎여서 내려오곤 하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담임 목사의 의지와 교회 전체적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가정마다 예산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아이들 교육비, 아이들 위한 재정이 얼마나 되는가? 혹시 월급, 주급이 줄어들었다고 아이들 학원비부터 끊는 가정이 있는가?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 교육비와 아이들에 관련된 재정을 줄이는 가정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들의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려고 부모들이 투잡을 뛰는 경우를 보면 보았지 아이들 교육에 관련된 돈부터 줄이는 부모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교회에서는 슬프게도 종종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른들 관련 예산은 줄이지 않으면서 교회 학교 예산을 줄여서 예산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교회 예산이 줄어드는 경우를 만나더라도 절대로 교회 학교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행여나 이런 결정이 교사들과 부장단, 그리고 교육부서 교역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분위기(air)라는 것이다. 군산드림교회 임만호 목사는 항상 교회 학교의 air(분위기 조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분위기 조성의 주도권은 담임 목사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설교 시, 기도회 인도 시 거의 대부분 가정과 다음 세대 교육에 대해 강조한다. 온 교회가 가정을 회복시키고 특별히 부모가 자녀들을 제자 삼도록, 그리고 교회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일 년 내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로 하여금 “늘 우리 담임 목사님은 교회 학교에 진심이야” 이렇게 생각하도록 실제적으로도 행해야 하고, 늘 목회의 핵심 DNA로 삼아야 한다. 교회가 임직자를 세울 때에도 임직자들이 늘 앞장서서 교회 학교 행사에 얼굴을 비추어야 하고 찬조나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단 위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 학교 행사에 대해 담임 목사가 광고하고 강조하고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행했던 군산드림교회는 담임 목회자가 부임 후 20년이 지나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교회 학교 사역 잘하는 교회가 되었다.

이제 한인교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텍사스 달라스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 학생들이 동아리처럼 모이는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곤 하였다.

신학 석사 과정의 학생이 기독교 교육 건물에 와서 그렇게 참여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이 가진 세대가 신앙 전수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신앙 언어’의 문제였다.

미국은 매우 영어 중심적인 나라이고 영어 주도적인 나라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미국으로 이민 오거나 유학 온 가정의 아이들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언어를 습득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좋은 점은 영어 습득하는 분위기가 잘 되어 있어서 영어 교육의 측면에서는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문제는 1세대인 부모 세대의 신앙 언어는 한국어인데 반해 아이들의 신앙 언어는 영어가 되어 버려, 서로 간에 신앙 전수가 언어의 다름으로 인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한인 교회 내에 EM(English Ministry) 사역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못하고 알아듣기 어려우니 영어로 하는 예배와 공동체를 만들어 주세요.” 이런 요청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여기 뉴질랜드의 이민 역사보다 두 배는 오래된 미국의 한인 교회들은 이제 와서는 EM 사역의 한계를 보게 되었다. EM 공동체는 한인 교회 내에 들어있는 또 다른 교회가 되었다. 한 지붕 두 가족 교회가 된 것이다.

이들은 백인 교회 공동체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인종적 차별과 구별됨이 있다. 그렇다고 한인 교회 내에도 완전히 들어오지 못한다. 한국말을 대충은 알아들어도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인교회 가정 내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장성하여 다른 주(state)로 취업하거나 학교 간 자녀들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에 부모님 가정으로 모인다. 몇 개월 만에 모여서 그간의 일들을 나누고, 신앙적 고민도 나누고, 신앙적 은혜도 나누어야 하는데 부모님을 만나고도 몇 시간만 앉아 있다가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금방 배웠어요.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한국어를 잘 못해요.” 이런 소리들이 살짝 부모님들 사이에서 자랑처럼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부모 세대와 대화가 단절되었고 한인 교회 내 신앙의 어른들과 나누는 대화도 단절되었다. 너무나 큰 손실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점에는 한인교회들 내에서 신앙 언어 통일을 위하여 일부러 한국말로 예배를 드리려는 시도들이 일어났었다.
처음에는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왜 우리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예배를 드리냐”고. 그러나 그 비난을 일 년 동안 참아낸 결과, 후에는 해당 부모가 찾아와 감사했다고 한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 예배 후 은혜를 나눌 수 있어요.”

필자는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 뉴질랜드에 왔을 때 교회 내의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기뻤고 감사했다. 교역자들에게도 절대로 영어로 설교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담임 목사인 필자의 설교를 들으며 기도회 모임에 매주 함께하고 있다.

자녀들이 한국말로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결국 영어는 이 나라에서 습득하게 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도 경쟁력이지만,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볼 때도 세대 간 신앙 전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인 교회 내 “신앙 언어”를 통일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