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슈만은 음악만큼이나 문학에도 심취했던 사람입니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 덕택에 그는 책 속에 파묻혀 살 수 있었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14살 때부터는 시(詩)를 써서 아버지가 출판하던 책에 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는 7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작곡에도 손을 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슈만의 어머니는 그를 라이프치히 법과대학에 보냈지만 그의 마음은 피아노에만 빠져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는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피아노 교사였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슈만의 재능을 알아본 비크는 슈만을 제자로 받아들여 자기 집에 하숙을 시키며 가르쳤습니다. 비크에게는 아홉 살 된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클라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때 이미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슈만은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은 음악사에 유명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슈만은 너무 열심히 연습하다가 손가락에 상처를 입어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이때 슈만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꿈은 크기만 해서 하늘 위를 치닫는데 현실은 어렵기만 한데다 피아니스트에게 너무도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으로 좌절해서 주저앉았던 그의 모습은 아마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노래한 하늘을 날다 뱃전에 내려앉은 알바트로스(Albatros)의 모습과 방불했을 것 같습니다.

상처 입은 알바트로스의 날개
시인(詩人)은 닮았다, 폭풍우 속을 넘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와
지상에 추방되면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거대한 날개는 오히려 걸음을 방해하네.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의 마지막 연)

하지만 슈만의 다친 날개를 다시 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창공으로 날아가게 해준 사람이 바로 클라라입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피아노 이외의 세상을 전혀 몰랐던 클라라에게 슈만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름다운 처녀로 그리고 이름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클라라를 슈만은 사랑하게 됐고 클라라 또한 아버지 몰래 슈만을 연모하고 사랑했습니다. 슈만이 작곡한 곡을 즐겨 치고 때로는 연주회에서 레퍼토리에 넣어 발표했습니다.

클라라가 법적 결혼 연령이 되는 18살이 되기를 기다렸던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하려 했지만 아버지 비크의 결사적인 반대로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갔고 우여곡절 끝에 3년 뒤 1840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슈만의 ‘노래의 해’, 1840년
클라라의 사랑을 얻고 드디어 결혼까지 하게 된 슈만은 비로소 안정과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너무 크기만 해서 마음껏 펴지 못했던 음악의 날개를 폈습니다. 사랑의 힘은 그렇게도 컸던 것입니다.

결혼식 전날 밤 슈만은 클라라에게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en)’을 바쳤습니다. 1840년 결혼을 전후하여 그에게는 샘물처럼 영감이 솟아올라 이 해에 작곡한 곡이 무려 180곡에 이릅니다.

이 해는 슈만의 삶이 바뀐 전환의 해이기도 했지만 주옥같이 아름다운 수많은 가곡을 작곡한 ‘노래의 해’이기도 합니다. 그때까지 겪었던 번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쟁취한 행복을 그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제 일찍부터 나는 새로운 27장의 악보를 썼습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선율과 반주는 나를 거의 미치게 합니다. 하지만, 클라라여, 노래를 쓴다는 것이 나로서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클라라에게 썼듯이 그가 쓴 가곡집은 곧 그의 사랑의 일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연가곡(連歌曲)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작품 48
‘시인의 사랑’도 역시 ‘노래의 해’에 나왔습니다. 시인 하이네(Heinlich Heine, 1797~1856)의 ‘노래의 책(Buch der Lieder)’ 중 서정적 간주곡(Lyrisches Intermezzo)에 실린 16편의 시를 슈만이 발췌해서 곡을 붙였습니다.

클라라와 결혼하기 전 법정 판결을 기다리며 하이네의 시(詩)중에서도 마음에 닿는 곡들을 골라서 작곡한 곡입니다. 하이네가 이 시집을 낸 것은 사랑에 실패한 상처를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슈만은 이 시를 가져와 곡을 붙여 어렵게 쟁취한 클라라와의 사랑이 열매 맺는 과정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모두 16곡으로 된 연가곡이지만 슈베르트의 연가곡과 같이 전체를 일관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사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16개의 노래가 조성과 선율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첫 곡 ‘아름다운 5월에’로 시작되는 이 가곡집은 6번째 곡까지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7번째에서 14번째 곡까지는 실연의 고통을, 그리고 마지막 두 곡은 사랑의 회상을 노래합니다. 이 가곡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피아노 반주입니다. 보통 노래의 반주와 달리 독자적인 피아노의 세계를 열기에 때로는 피아노 반주에 노래가 붙어있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노래가 시(詩)가 되고 시(詩)가 노래가 된 16곡
시의 내용을 알고 감상해도 좋고 제목만 알고 시의 내용을 상상하며 감상해도 좋지만 16곡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제1곡 ‘아름다운 5월에’ ‘아름다운 5월에 내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났네’라고 사랑을 고백하는 이 노래는 피아노 반주도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설렙니다.

제2곡 ‘나의 눈물에서’ ‘나의 눈물에서 많은 꽃이 피었고’라고 자신의 마음에 고백하는 탄식입니다.

제3곡 ‘장미, 백합, 비둘기’ 옛날엔 이 모두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오직 단 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제4곡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집니다.

제5곡 ‘내 마음을 백합 품 안으로’ 피아노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곡은 백합의 미묘한 한숨입니다.

제6곡 ‘성스러운 라인강의 흐름에’ 쾰른 성당의 마리아의 모습과 그녀의 모습이 똑 닮았습니다.

제7곡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 시인이 연인의 배신을 깨닫는 순간 달콤한 노래는 사라집니다.

제8곡 ‘꽃이 안다면’ ‘내 마음의 상처를 저 작은 꽃이 안다면 나와 함께 울어줄 텐데’ 하며 울부짖는 실연의 아픔이 섬세한 피아노 반주를 타고 슬피 흐릅니다.

제9곡 ‘울리는 것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혼례의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는 실연한 남자의 심정을 묘사합니다.

제10곡 ‘연인의 노래를 들을 때’ 옛 연인이 불렀던 노래를 회상하며 ‘깊은 슬픔’을 노래합니다.

제11곡 ‘젊은이는 소녀를 사랑하고’믿을 수 없는 사랑의 허구를 자조와 체념으로 풍자합니다.

제12곡 ‘밝은 여름 아침’ 떠난 연인을 용서하려는 시인의 심정을 그리는 서정적 선율입니다.

제13곡 ‘나는 꿈속에서 울었다’ 꿈에서도 자다 깨어도 울음만 나오는 실연의 슬픔을 노래합니다.

제14곡 ‘밤마다 꿈속에서’ 사랑의 감미로움과 슬픔을 그리며 이제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제15곡 ‘옛이야기 중에서’ 동화와 마법의 나라를 그리며 그곳에 가고 싶은 소망을 노래합니다.

제16곡 ‘지겨운 추억의 노래’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큰 관에 넣어 바다에 가라앉히고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합니다. 관이 커야 하는 이유는 사랑과 사랑의 번뇌가 들어있기 때문이랍니다.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Dietrrich Fischer Dieskau)가 부르는‘시인의 사랑’
명곡이니만큼 좋은 연주가 많지만 누구보다도 디스카우가 감정의 폭이 다양한 이 노래들을 담백하고 격조 있게 잘 불렀습니다. 디스카우는 이 곡을 좋아해서 6번이나 녹음했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그가 Jorg Demus의 피아노에 맞춰 노래한 연주로 들었습니다. 디스카우의 절창이 돋보이는 명연입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세상의 모든 사랑은 변하고 끊어짐으로 사람들은 울고 웃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평안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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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