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이하며

추수의 계절 맞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기를

지금의 삶이 감사한 지 아니면 불평의 삶인 지를 점검해 보라

올해 2022년 추석은 9월 10일이다. 뉴질랜드에서 달을 보며 한국의 고향을 그려본다. ‘추석’ 하면 고향 가는 길이 떠오른다. 고향에 가면 가족, 송편, 보름달, 제사, 성묘 가운데 조상에 대한 차례가 중요하다.

유대인에게도 절기에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기 위해 모인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공통점이 있다. 한국인은 음력을 따르고 유대인도 유대력을 따른다. 하지만, 제국은 세상을 지배하면서 태양력을 따른다. 지금도 태양력을 쓴다.

세상의 권력은 태양신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긴다. 태양신에게서 세상의 물질과 풍요가 온다고 믿고 이를 통해 세상의 권력을 장악한다. 반대로 가나안과 중동은 달력을 따르고 농사와 관련된 바알신을 섬긴다. 지금은 달신을 섬기는 것은 회교이다.

추수와 달력의 관계
유대인은 태양신과 바알신 사이에서 우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긴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로새서 3: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태양신이든 달신이든 선택하여 섬겨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선포했다(여호수아 24: 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추수와 절기의 관계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다. 유대인의 절기에는 추수와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유월절은 양력 3-4월 중으로 보리 수확하고 출애굽을 기념한다. 오순절(맥추절)은 양력 5월 중에 밀 수확을 하고 시내산 율법을 받은 때를 기념한다. 초막절은 양력 9-10월 가운데 가을 추수로 대추야자, 올리브, 포도, 무화과를 수확하고 광야 초막 생활을 기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과 같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주셨으며, 갈 길을 인도하셨다. 가나안에서는 농사와 목축을 하였다.

절기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추수에 대한 감사에서 나온다.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절기를 통해 추수 감사와 더불어 구원과 은혜의 관계를 바로 알아야 한다.

추수와 구원의 관계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신명기8:8). 지금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성경의 수장절에서 유래하고 있다. 성서적 근거가 분명히 있다.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다. 정확히 같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전달과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수장절, 초막절, 장막절이라고도 불리는 이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추수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한해의 수확을 마감하면서 새로운 농경 순환의 시작이 된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 시작의 전환점이다. 인생에는 항상 시작과 끝이 있다.

추수와 구원을 경험
초막절에는 유대인은 집을 떠나 8일간 광야에 초막을 짓고 가족이 살아야 한다. 현대 유대인은 광야에 나가지 않고 아파트 베란다, 또는 마당에 천막을 치고 가족이 함께 잔다. 유대인에게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한 것을 기념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유대인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시고 이집트에 보냈으며 탈출하여 광야에 40년간 살다가 왜 가나안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이야기를 지난 2천 년 동안 나라도 없이 세상에서 핍박과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지켜왔다.

190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은 마침내 독립했다.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가 1948년 5월 4일 독립했다. 이것이 생명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는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알게 하셨다.

유대인의 아버지는 초막 안에서 “인생은 천막 안에서 와 같이 잠시 이 세상에 살다가 가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했다.
유대인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천막에 살면서 종말론적인 삶의 본질을 체험한다.

현대인은 너무나 바쁘게 살다가 사고나 병이 들면 비로소 죽음을 생각한다. 이때는 이미 너무나 늦었다. 절기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지나온 삶과 지금 서 있는 삶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때이다.

지금의 삶이 감사한 지 아니면 불평과 원망의 삶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절기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모든 것에는 쉼표가 있듯이 인생에도 쉼이 있어야 한다.

추수와 구원의 감사
유대인은 2천 년 동안 나그네로 살았다. 유대인에게는 유목민적인 기질이 있다. 지금 1천 3백만 중에서 6백 만 명이 이스라엘에 산다. 7백 만 명은 해외에 산다. 유대인은 뉴질랜드에도 살면서 유대인 디아스포라 10위 안에 든다.

유대교로 개종한다는 말 자체가 나그네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은 나그네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성경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한다. 나그네를 보호해줄 것을 명령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그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세상을 광야로 여기고 흩어져 산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11). 베드로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강조한다.

사진/박현득

인생은 나그넷길이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가운데 뉴질랜드로 이민이나 유학을 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민과 유학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 끝은 어디인가? 죽음으로 끝이 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 가는 나그네 인생인가? 이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의 나그네에게 내일은 항상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같다. 선물은 기쁨으로 받고 누리면 행복하다. 내일을 위해 걱정이나 근심, 그리고 염려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환경과 여건에 상관없이 추수의 계절을 맞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마음껏 누리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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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