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역 일대 선교역사

대부흥운동

평양과 북부지역의 교회 성장 청일전쟁 이후 평양을 비롯 북부지역은 놀랍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영적 각성의 진원지는 송도(개성)와 평양과 원산이었다.

처음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1901년 10월 남감리교 선교회와 북감리교 선교회가 연합으로 개최한 신학회에서였다. 신학회 수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여 참석한 이들 모두가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새롭게 다짐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1902년 사경회, 고난주간 특별기도회 때 다시 나타났고, 1902년 속장과 권사들을 위한 감리교 선교회의 연합 사경회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1903년 1월 개성에서 열린 남감리교 신년 기도회에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당시 출석 교인을 기준으로 할 때, 차이가 뚜렷하다. 1901년 그리스도 신문이 밝히는 통계에 의하면, 1900년 북장로회에 다니는 교우 13,500명 가운데 서울이 3,318명, 부산 156명, 대구 40명인 반면에 평양이 10,055명으로 평양의 교세가 서울에 비해 3배가 컸다.

1900,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교세 비교 (당시, 그리스도 신문 자료)

 * 네 개 장로교 선교회 등록된 입교인 수

북장로교 3,690명 평양 2,230명, 서울 1,430명, 대구 4명
남장로교 130명, 캐나다 장로교 90명, 호주 장로교 20명

 * 출석교인 (1901년, 그리스도 신문 자료)

북장로회, 13,569명 서울 3,318명, 부산 156명, 대구 40명, 평양 10,055명
남장로회, 500명 전주 100명, 군산 300명, 목포 100명,
캐나다 장로회, 360명 함흥 원산 360명
호주장로교, 80명 부산 80명

 * 예배 처소 (1901년 자료)

북장로교, 237 개소서울 48, 부산 2, 대구 2, 평양 185,

 * 주일학교 처소(1901년 자료)

북장로교, 121개소서울 31, 부산 1, 평양 189,

* 주일학교 학생 수(1901년 자료)

북장로교, 8,668명 서울 1,450명, 부산 50명, 평양 7,166명
캐나다선교회, 100명 함흥, 원산 100명
 

 * 선교회가 운영하는 학당(1901년 자료)

 북장로교학당 28개 평양 17, 서울 10, 부산 1
재학생 597명 평양(380명): 남학생 330명, 여학생 50명  서울(165명)  부산(50명): 남학생 25명, 여학생 25명

평양 사경회 서울 목포 원산 의주 그리고 심지어는 만주 심양에서까지 찾아올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실제로 평양의 교회는 1902년도에 들어서면서 교회마다 모여드는 교인들로 만원이었다. 평양교회는 1903년에 1,104명이 세례를 받았고, 1,063명이 학습을 받았다. 청일전쟁 이후 이와 같은 성장은 감리교에도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내었다.

개성과 평양을 중심으로 북부지역에서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1903년 8월 원산에서도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 개성과 평양이 영적 각성 운동이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기도회와 사경회 기간에 일어나듯이, 1903년 8월에 일어난 원산부흥운동 역시 일주일간 열리는 말씀 공부와 기도를 중심으로 한 기도회 기간에 일어났다.

원산 부흥 운동 원산 기도 모임에 불을 지폈던 선교사는 감리교 의료선교사인 하디(Robert ALexa Hardie) 선교사였다. 당시 하디는 한국에 파송된 서양 선교사들에게 흔히 있었던 자기의 능력과 학력과 실력을 의지하는 자만감, 한국인을 미개한 민족으로 생각하는 교만감 그대로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모임 가운데 그대로 회개한 것이다.

원산 영적 부흥운동의 확산

1903년1904년원산 지역 영적 부흥
1904년강원도 지경터(12일간 부흥회, 놀라운 감동), 개성지방사경회(개성남부교회, 복음의 능력, 죄의 의미, 중생의 경험, 성령충만), 서울, 평양, 제물포 부흥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충만한 은혜 경험,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여인이 화해했고, 수년 동안 교회에 다니던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거짓말을 했고 도적질을 했으며 심지어 간음죄도 저질렀다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한 사람의 참된 고백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자신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1905년강화지역 (강화 홍해교회, 여자 사경회 기간 중 나태한 신앙 통회)
1906년전국 신년부흥집회 개최, 선교사 사경회 개최(평양, 원산, 서울, 목포 부흥운동, 진남포 부흥운동) 

하디의 고백은 모인 이들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회개의 운동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선교사 가운데 캐나다 출신의 업아력(A.F. Robb)선교사는 1904년 사경회에서 ‘난생처음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역사를 체험’했고, 사경회에 모인 선교사들, 한국인들 남녀노소가 모여 울면서 죄를 통회하고 사하여 주실 것을 호소했다.

평양 대부흥 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은 원산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역시 사경회 기간에 일어났다. 이 사경회는 2주 동안 모였고 성경공부에 주력하였으며 저녁에는 전적으로 특별전도집회를 가졌다. 또한 평양지역 선교사들은 사경회 기간 중에도 정오 기도모임을 가졌으며, 당시 사경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흥에 대한 기대감은 지대했다.

평양에서의 부흥운동은 한때 한국에서 가장 희망 없는 지역으로 알려진 평양시를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찬 소망의 도시로 바꾸어주었다. 정령 숭배가 들끓고 우상들이 범람했던 평양에 부흥운동 결과, 어디서나 기도 소리와 통회와 찬송 소리가 들렸다.

원산에서 시작한 부흥운동의 불씨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다시 점화되더니, 강하고 놀랍게 평양에서 다시 주변 지역으로 전국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사경회가 1월에 끝나고 선교사들과 한국 지도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부흥운동의 열기를 전국으로 저변 확대 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