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역 일대 선교 역사-서구 개신교 선교사의 활동

네비우스 선교 정책
네비우스 선교 정책은 한국 선교를 특징 지워주는 가장 중요한 선교 정책이었다. 언어 시험과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습득은 한국에 입국하는 모든 장로교 선교사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사항이었다.

곽안련 선교사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핵심은 성경공부에 있었고 이것이 자립(Self-Support), 자치(Self-Government), 자전(Self-Progation)의 실현을 가져다주었다고 지적하였다. 네비우스 방법의 중심은 성경을 모든 기독교 사역의 기초로 강조한 것과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한 훈련에 있었다. 이것에 의해 성경은 연구되고 신자들의 마음에 적용되었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가장 큰 결실은 한국 선교가 처음부터 성경 중심의 교회로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틀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이다.

주일학교 (Sunday School in Church)
네비우스 선교 정책은 주일학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고, 주일학교는 선교 정책의 가장 큰 실천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채택되던 1890년에 시작한 주일학교 사역은 곧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을 보완하는 질적 성장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아 갔고 그 수도 놀랍게 신장했다.

주일학교 선교사역 경과

1890 주일학교 시작
1897 평양에 5개 주일학교, 교재 인쇄하여 사용
1905 장감연합공회 조직 후 주일학교 공과위원회 조직
1907 장감연합공회 ; 전국 주일학교 공과 통일, 장감선교회 ;공과 출판할 기금확보, 전국 주일학교 총괄할 총무임명
1910세계 통일 공과 사용
191113인 종교교육위원회 설치
1913서울 경복궁에서 주일학교대회 대표들을 포함 14700명이 참가하여 처음으로 주일학교대회가 열림
1920주일학교 일만 사천 개로 증가
1920일본 세계주일학교 대회에 지도자 파견 및 국내교회 주일학교 방문 정례화, 전국 각처에서 주일학교 대회 개최
1921제 1차 전국 주일학교 대회 개최
1925제 2회 전국 주일학교 대회 개최
1930제 3차 전국 주일학교 대회 개최 (평양)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서 시작된 성경 중심의 주일학교는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복음에 기초한 교회로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주었다. 주일학교는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에만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 주일학교는 일반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많은 한국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복음이 개인의 의식변화와 영적 각성을 촉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줌으로써 민족과 사회 앞에서 책임 의식을 갖게 해 주었던 것으로 복음이 문화변혁에 공헌하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사경회 선교 운동
선교사들이 시행한 사경회 운동도 한국교회에 큰 결실을 가져다준 선교 정책이었다. 사경회는 성경 중심으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교회 지도자와 일반 교인으로 구분하였으며, 지도자 육성을 목적으로 한 사경회는 각 지방의 형편에 따라 10일간씩 개최되어 성경 지식을 심어주었고,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내용을 교회에 가서 가르치고 그대로 설교하였다.

사경회의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진 후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봄이나 겨울 농한기에 개교회 중심으로 시행되었으며, 개교회에서는 저녁에 전도집회(부흥회)를 갖는 한편, 여름 또는 겨울성경학교를 시행하여 평신도 지도자들을 육성하였다.

년 중 2주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사경회는 당시 90퍼센트가 농민들이었던 직업 분포상으로 볼 때 매우 적절한 방식이었다. 특히 신정이나 구정이 시작되는 2주간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연휴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경회 기간으로 가장 적합했다.

평양 대부흥운동 수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신년 초 두 주를 사경회 기간으로 지켜오기 시작해 오랫동안 장로교와 감리교를 초월해 중요한 행사로 시행하였다.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장대현 교회의 겨울 남자 사경회가 1907년 1월 2일부터 14일까지 개최되었던 것도 이와 같은 배경에서였다.

사경회 프로그램

오 전성경공부 집중-종교적 소양교육 포함: 금연, 금주, 정결, 결혼관,
오 후전도행사,-저녁 전도집회 초청
저 녁전도집회(부흥회)-지명도 있는 부흥사
(기타내용)새신자 등록 후: 주기도문, 십계명, 구원계획 교육, 구체적으로 삶에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  엄격한 주일성수 개념(학습과 세례문답 자격증 필수), 수요일 기도회 참가, 엄격한 권징, 원입교인(학습교인) ㅡ 3개월 훈련과정


선교 초기 한국교회의 급성장 이유
수많은 초기 선교사들은 가장 근본 요인으로 성경중심의 선교 정책에서 답을 찾고 있다. 또한 한국선교의 놀라운 성장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요인들은 선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 기독교의 본질, 인종, 문화, 민족에 대한 기독교의 호소력, 반 종교체계의 약점,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 당시 한국의 정치적인 무력함으로 인한 공포감, 기독교야말로 국내의 적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수단이라고 판단한 애국지사들의 소망 등이었다.

감리교는 속회 제도를 도입하여 도시의 교인들을 몇 개의 속회로 나누어 각기 지도자를 하나씩 정하여 속회를 인도하게 하였다. 속장들은 매 주일 자기들 속회의 형편을 담임목사나 선교사에게 보고하였다. 농촌교회에서도 속회를 조직하여 속장을 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새신자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와 함께 안수를 받지 않았지만 지방전도사, 권사, 전도부인을 임명하여 교역자가 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였다. 이들은 주로 신자들이나 불신자들의 가정을 일일이 심방하고 다니면서 한글도 가르치며 성경과 교리를 가르쳐서 그들에게 신앙을 굳게 하는 일을 감당하였다.

또한 지방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인 권사와 설교자들을 위한 신학반을 구성하여 처음에는 1년에 2주 기간이었으나 후에는 1년에 2개월로 기간을 늘려 시행하였다.

직접선교와 간접선교(의료선교, 교육선교)의 균형을 통해 사회 계급을 초월 모든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또한 사경회와 신학훈련의 제도를 통해 평신도 지도자를 육성하여 이들을 사역에 동참시켰다. 성경 중심의 평신도 지도자 육성은 자립과 자전과 자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주었고 한국인에 의한 한국교회를 육성할 수 있도록 여건을 형성해주었다.

또한 선교사들은 한국의 종교, 전통, 문화, 역사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병행하는 가운데 한국선교를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우수한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고 한국 문화에 관한 꾸준한 연구 활동, 우수한 국내외 서적을 영역, 한역하여 국내외에 소개함으로써 기독교가 단순히 인간의 영혼 구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 전반에 심도있는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교회의 영역을 넘어 복음의 이상을 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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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파라카이 예수사랑교회 다민족 선교 담임목사. 총신대신대원 졸업. 한의사로서 남태평양과 뉴질랜드 지역에 의료 선교 사역을 하고, 미국 그레이스신대원 문화교류학박사 논문인‘북한선교를 위한 접촉점으로서의 복음에 대한 연구’를 쉽게 풀어 2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