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게 하라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게 하라’. 대학 시절 선교 단체 동아리 활동을 할 당시, 설교 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갖는 것이 종국의 목적을 이루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의미였다.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서인지 은율이를 키우면서 이 금언을 의식적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은 경험이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해내기 벅찬 과제일 수 있다. 혼자 하면 손쉽게 마칠 일을 아이와 같이하면 두 세배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가끔은 위험이 따르기도 했다. 그래서 부모의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준다
은율이에게 무언가를 시도해 볼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 주려 했다. 5세까지 가정 보육을 했기에 마음만 먹으면 물고기, 강아지, 곤충 먹이 주기, 택배 박스 뜯기와 포장하기 등 이를 실천할 기회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어른이 하는 것은 다 따라 해보고 싶어 하고, 또 자신도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칼을 사용하는 것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평소 택배 박스 뜯는 나를 유심히 보던 은율이는 어느 날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칼을 가져와서 박스를 열고 있었다. 엄마가 못 하게 말리려나 싶었는지 조용히 시도하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도리어 겁을 먹고 다치기라도 할까 봐 별일 없는 듯 다가갔다. 은율이는 칼날을 위로 향한 채 박스를 쑤시고 있었다.

“엄마가 하게 해줄 테니까 앞으로는 몰래 하지 말고 같이 하자.”라고 했다. 그리고 칼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박스를 열어보았다. 테이프가 잘려 나가는 느낌이 신기했는지, 엄마가 혼자 하던 일을 자기와 같이한다는 기쁨 때문인지 밝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할 줄 아는 일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것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준다. 남편은 자주 “은율아, 자꾸 연습하면 돼. 할 수 있어.”라며 격려해 준다. 사내아이들이 할 만한 공차기나 태권도 발차기 같은 것도 잘한다며 칭찬한다. 자란 키만큼 벽에다 표시해 주며 “벌써 이만큼 컸네. 우리 은율이 기특하네.” 하면서 몸의 성장도 칭찬한다

아이와 집안일을 함께 해보자
우리 집은 남편과 나, 그리고 은율이가 함께 꾸미고 만든 흔적들로 가득하다. 이사 오기 전 우리는 페인트 작업을 함께 했다. 은율이 방을 핑크로 꾸며 주기로 일찍부터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페인트칠하는 날, 나는 미술 놀이용 방수 가운을 준비했다. 남편이 큰 붓질을 하고 은율이와 내가 조금씩 도왔다. 롤러로도 밀어보고 붓으로도 칠해보며 은율이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스스로 파악해 나갔다.

아빠 엄마와 함께 하는 페인트칠

자신의 방을 꾸미며 은율이는 무척 뿌듯해했다. 그날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참 행복하다. 이렇게 집안일을 나누어서 하다 보면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간다. 억지로 찾지 않아도 쉽게 칭찬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일거양득이다.

페인트칠 다음 날 아빠가 출근한 후 은율이와 둘이서 베란다도 칠했다. 이전에 어린이집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초겨울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은율이와 나는 즐겁기만 했다

핑크색으로 칠한 은율이 방에 키 재기 용 벽지 스티커를 붙여 주기로 했다. 하지만 스티커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기다란 브라키오 사우르스 공룡 목에 키 재기 눈금이 들어간 여러 조각의 스티커는 눈썰미 없는 엄마가 뜯어 붙이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엄마의 난감함을 눈치챘는지 커다란 조각을 이리저리 대어 보던 은율이는 설명서를 보지도 않고 붙이기 시작했고 엄마의 칭찬에 신이 난 은율이는 수많은 공룡과 별, 나무 스티커로 벽면 하나를 가득 채웠다.

공룡스티커

은율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면서 행복한 얼굴을 했던 이유는 엄마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믿음을 먹고 자란 아이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선다.

착한 아이는 ‘위험하다, 하지 마라.’는 말에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지만 당당하게 키운 아이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라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시작해 볼 것이다. 설사 실패해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은율이를 키우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은 내가 은율이의 모든 ‘첫 순간’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엄청난 특권이다. 육아를 하는 동안 커리어를 쌓지 못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은율이가 세상을 알아가는 신비한 첫 순간을 모두 함께했으니 말이다.

거실 창에서 바라본 눈 쌓인 세상, 작은 손을 꼬물거리던 가위질, 엄마랑 만든 카레라이스, 까치발로 서서 대어본 교통카드…. 그때마다 은율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며시 도왔다. 금붕어 두 마리를 처음 사 온 날 나는 은율이 보다 더 들떴다.

페인트칠

“은율이가 얘들을 어항에 넣어 볼 거야. 알았지?” 은율이는 비닐봉지에 담긴 물고기들을 조심스레 작은 어항에 옮겨 담았다. 성공이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한 젊은 부부에게서 중고 어항을 받아왔다. 남편은 은율이와 함께 욕실에서 어항에 담긴 자갈과 장식물을 씻었다. “네가 이 물고기 모양 장식을 닦아줘. 아빠는 자갈을 씻을 게.” 혼자 하면 금방 끝날 일이지만 아이와 함께 했다. 아빠와 함께 이 일을 한다는 게 신이 난 은율이의 표정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았다.

다음날 그 사진들을 보다가 뭉클했다. 칫솔로 물레방아와 물고기 모양의 장식품을 씻는 은율이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다. 아이는 자신에게 부여된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듯 점점 더 큰 성공을 향해 나갈 것이다. 멀리서 기회를 찾지 말고 집안일을 같이 하면서 큰 효과를 누려보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위험하니까’ 못 하게 했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미션을 맡기면 아이는 어른처럼 대접받는다고 느끼며 좋아한다. 지금 하고자 할 때 실컷 기회를 주고 작은 성취를 맛보게 한다면 커다란 성공의 길은 스스로 닦아 나갈 것이다.

작지만 새로운 시도, 그것이 아이의 하루를, 일 년을, 일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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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혜진
고려대 및 한동대 국제로스쿨 졸업, 뉴질랜드 FamilyMinistries 학교수료.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어린 시절이며 육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믿음으로 자발적 경단녀로서 양적 질적 시간을 꽉꽉 채운 가정양육을 하며 느낀 경이롭고 행복한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스타: miracle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