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는도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말입니다. 가장 여성적이지만 가장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인기가 계속되는 이 곡이기에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탄식처럼 고백한 이 말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흔히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을 논할 때 꼭 손꼽히는 곡이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이 두 곡을 비교하면서 누군가는 베토벤의 곡을 ‘아담’으로 멘델스존의 곡을 ‘이브’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멘델스존의 곡이 ‘여성적’이라는 의미이지만 이 표현은 아마도 이 곡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말일 것입니다. ‘여성적’이기에 이 곡은 이제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 아름다운 감성의 세계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이라는 음악가
작품은 곧 그 작가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듯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멘델스존을 반영해줍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와 같은 대부분의 음악가가 가난한 삶에 시달리며 힘들게 작곡할 수밖에 없었지만 멘델스존은 좋은 집안에 태어나 여유 있는 생활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름있는 철학자였고 아버지는 성공한 은행가였고, 어머니는 영문학, 불문학, 이탈리아 문학에 정통한 문학가였으니 참으로 다복하고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행운아였습니다. 집안만 좋은 것이 아니고 멘델스존 자신도 여러 분야에서 걸출한 능력을 보여주는 천재였습니다.

작곡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오르간의 명수였으며 뛰어난 지휘자로 여러 사람의 곡을 지휘하였습니다. 문학과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고 언어 능력이 뛰어나 영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호인 괴테가 어린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고 성장한 멘델스존이기에 그의 대부분의 음악은 우아하고 섬세하며 밝고 화려합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로 멘델스존의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일 것입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
1835년 스물여섯 살이 되었을 때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상임 지휘자가 됐습니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페리디난트 다비트(Ferdinand David)를 콘서트마스터로 임명했습니다.

친구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다비트에게 경의를 품고 있던 멘델스존은 1838년 7월 30일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네에게 다음 겨울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써주고 싶네. E단조 협주곡이 지금 떠오르는데 그 도입 부분이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네, “라고 썼습니다.

이 곡이 완성된 것은 그 후 6년 뒤입니다. 멘델스존이 이 곡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곡을 쓰면서도 다비트와 자주 서신 왕래를 하면서 기술적인 면이나 음악적인 면에서 다비트의 조언을 경청했다고 합니다. 두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 속에서 태어났기에 이 곡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따뜻한 감성이 곡 전체에 흐르면서 내용과 형식이 완전한 명곡이 되었을 것입니다.

초연부터 성공한 독일 낭만주의의 보석
초연은 완성된 다음 해인 1845년에 게반트하우스에서 행해졌습니다. 바이올린 독주는 응당 다비트가 맡았지만 지휘봉은 게반트하우스의 부지휘자 닐스 가데(Nels Gade)가 잡았습니다. 멘델스존은 건강이 좋지 않아 지휘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 협주곡은 그때부터 계속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독일 낭만주의의 보석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멘델스존은 이때부터 건강이 계속 악화하여 2년 뒤인 1847년에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마지막 대규모 관현악곡이면서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수많은 협주곡이 나왔지만 부드럽고 우아한 정서와 조화를 갖춘 형식의 아름다움으로 단연 독일 낭만파가 낳은 최고의 협주곡입니다.

12세의 나이에 멘델스존의 지휘로 베토벤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데뷔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만년에 “독일은 네 개의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졌다… 그중에 가장 내면적이고 마음의 보석과 같은 곡은 멘델스존의 협주곡이다,”라고 하며 이 곡을 극찬했습니다(나머지 세 곡은 베토벤, 브람스, 그리고 브루흐의 협주곡들입니다).

요아힘의 칭찬처럼 이 곡은 대중들에게뿐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도 도전 의식과 영감을 불어넣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극복해야 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렇기에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다투어 많은 녹음을 남기고 있고 수많은 연주회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며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지정곡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곡의 구성
이 협주곡은 보통의 협주곡처럼 빠름-느림-빠름 구조의 3악장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혁신적으로 느껴져 초연 당시에 많은 흥미로움을 자아내었습니다. 그 이유는 1악장 초반에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의 도입 부분이 거의 없이 바로 나왔으며 이어서 전 악장이 중단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해서 연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낭만적이며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악장 간의 쉼으로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런 구성을 취했을 것입니다. 각 악장이 선율과 화성으로는 연관되어 있지만 그러면서도 독립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악장 Allegro molto appassionata(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
현악기의 분산화음이 속삭이듯 나오자마자 독주 바이올린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행복이 넘치지만 그 속에 우수를 담은 듯한 아름다운 선율은 누구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멘델스존 특유의 가락입니다. 화려하고 순수하여 그윽한 향기마저 뿜는 이 1악장이 좋아서 이 협주곡을 듣는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정도로 매혹적인 악장입니다.

2악장 Andante allegro non troppo(느리게 지나치게 빠르지 않게)
1악장 끝에서부터 계속 울리는 파곳의 선율 위에서 지극히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노래가 펼쳐집니다. 중간에는 관현악이 장중한 느낌으로 잠깐 울렸다가 독주 바이올린이 다시 이를 받아 변주로 이끕니다. 끝에서는 잠잠했던 관현악이 살며시 고개를 듭니다. 슈만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칭찬한 멘델스존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악장입니다.

3악장 Allegro non troppo–Allegro non vivace(조금 빠르나 지나치지 않게, 활기차게)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이 1악장을 연상시키는 유사한 선율로 시작합니다. 순환적 형식을 보여주는 이런 구성이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빠르고 현란한 선율은 독주자에게 고난도의 연주 기술을 요구합니다. 경쾌하고 정열적이며 마지막 코다 부분에서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서로 경쟁하듯 마음껏 기교를 뽐내다가 열광의 정점에서 화려하게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추천하고 싶은 연주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양대 산맥인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소련 국립 심포니(키릴 콘드라신 지휘)와 하이페츠(Jascha Heifetz)/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샤를르 뮌시 지휘)의 연주가 명연주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정경화가 샤를르 뒤트와(Charles Dutoit)가 지휘하는 Montreal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한 1981년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선배들의 연주 못지않은 명연주입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시편 1편 1절에서 3절이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이름’ Felix’부터가 행복이라는 뜻을 가졌던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은 부유하고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했지만 불행하게도 38세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과연 그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는지는 환경과 외관적인 것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태어나고 살아도 하나님 말씀을 즐겁게 묵상하고 따를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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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